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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사람을 구하는 시민들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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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3-16 00:12:30

오늘 저녁에 1호선을 타고 가던 도중에 뜻하지 않은 사건을 목격하게 되었네요. 저는 문쪽에 기대어 가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갑자기 앞으로 푹 고꾸라지더니 그자리에서 쓰러지고 마셨습니다. 저는 멀지 않은 곳에서 쓰러지는 모습까지 똑똑히 봤는데 막상 그 상황이 되니까 적극적으로 나서지거나 그러지 않고 뭔가 멈칫하면서 어쩌나... 하고 속으로 발만 동동 구르게 되더라구요. 주변에 다른 시민들도 처음에는 어떡하지 하면서 3~4초간 멈칫하더니 이내 주변에 있던 분들이 달려들어서 할아버지를 흔들어 깨우려고 하거나 119에 전화를 하기 시작하더라구요.

 

특히 주변에 젊은 여성 분들이 많았는데 여성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돕고 나섰습니다. 코에 손을 대고서 호흡을 하는 것 까진 확인했으나 할아버지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잠시 그러다가 약간 의식을 차리시는 듯 하여 사람들이 달려들어 할아버지를 다시 자리에 앉혔는데 여전히 몸은 못 가누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좀 놀랐던 게 할아버지 머리 뒤쪽에 다쳐서 치료받은 듯한 큰 상처가 있더라구요.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였는데 피 같은 것도 아직 배어있어서 처음에는 방금 다친 건 줄 알고 놀랐으나, 뒤로 넘어지신 것도 아니고 상처를 치료한 흔적이 확실히 보였기에 원래 있던 상처구나 하고 조금 안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약간 뇌졸중처럼 쓰러지셔서 뇌 쪽에 지병이 있어 치료받고 계셧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열차에 타고 있던 승무원도 와서 상태를 보고, 또 한 여성분이 119와 계속 통화를 하는데 일단 119가 인근의 동대문 역으로 오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동대문 역에 도착하자 할아버지를 부축해 옮기는데 의식이 거의 없으셔서 여러명이 달려들어야 했습니다. 근데 주변에 여성 분들이 많고 적극적으로 구조하는 남자 분은 딱 한 명이어서 부축하기가 좀 곤란하자 그제서야 주변에서 발만 구르고 있던 제가 나서서 할아버지 두 다리를 잡고 옮기는 걸 도왔습니다. (할아버지가 무척 마르셔서 굉장히 가벼웠네요.) 또 그 와중에 어떤 분은 꼼꼼하게 할아버지 짐을 챙기기도 했구요.

 

플랫폼에 나왔는데 의식이 거의 없으신지라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눕혔습니다. 처음 할아버지를 옮길 때에는 많은 시민들이 달려들어서 같이 내렸는데, 나중에 절반 가량은 다시 열차로 돌아가시고 몇 명만 남았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같이 남았는데, 여성 두 분이 119와 계속 통화를 하고 계셨고, 한 여성분은 적극적으로 할아버지 얼굴을 쓰다듬거나 손을 잡으며 다독여주고 계셨습니다. 또 적극 구조하던 남성분은 할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자 바로 받아서 상황을 설명해드렸습니다. 전화 거신 분은 여동생 분이시라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머리를 다친 것도 모르시는 걸로 봐서 아마 머리 치료는 최근에 받으신 것 같더라구요.

 

근데 지하철 안이지만 나름 도심 한 복판이라 119가 얼른 출동할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를 플랫폼에 눕힌 후에도 15분은 있어야 온다고 하더라구요. 뭐 사정이 있겠지만 응급 상황인데 좀 많이 늦네... 싶었습니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좀 더 의식을 차리셨는데 막 춥다고 하고 머리에 고통을 호소하시더라구요. 추워하시니까 주변에 여성분들이 겉옷을 벗어서 덮어드렸습니다.

 

근데 다음 열차가 한참을 안 와서 거의 10분 넘게 플랫폼에 있었습니다. 적극 구조에 나선 여성 세 분과 남성 한 분, 그리고 좀 어정쩡하게 남아있던 저를 포함한 남성 두 명, 그리고 역무원 둘... 이렇게 있다가 다음 차가 오자 저도 시간 약속이 있고 해서 다른 어정쩡 남성분과 함께 다시 열차에 탔습니다. 그나마 제가 갈 쯤에는 할아버지가 많이 의식을 차리셨고, 뭐가 서러우신지 막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걸 보면 약주를 좀 드셨나 싶기도 했는데, 처음 쓰러지실 때에도 만취해 쓰러지는 게 아닌 뇌졸중에 가까워 보였고, 행색은 좀 남루하셨지만 딱히 술냄새가 나거나 그러지도 않으신 걸로 보아 취객같지는 않았습니다. 뭐 일단 머리를 그렇게 다친 상태였으니 상식적으로 술을 많이 먹지도 못하셨을 거구요. 어쨌든 아주 위급한 고비는 넘긴 것 같고 곧 119도 올 듯 하여 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열차에 올랐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느낀게 참 우리나라 시민들 의식이 높구나... 그리고 주변에 저를 포함한 남성들은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주저하고 쭈볏댔는데, 젊은 여성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할아버지를 구하려고 나서는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렇게 착한 여성분들이 많은데 인터넷에선 왜 남녀가 편을 갈라서 그렇게 싸워대는지... 몇몇 찌질한 페미니스트들이 대부분 선량한 대한민국 여성분들의 이미지를 공연히 망가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아무튼 쓰러지신 할아버지도 부디 쾌유하시길 빌며, 적극적으로 구호에 나섰던 시민 분들도 올 한 해 꼭 복받으셨으면 하네요. 글고 막상 일이 터지자 주춤주춤 어쩔 줄 몰라한 제 모습이 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 옮길 때 다리 드는 일은 맡아서 그나마 사람 구실은 좀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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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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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6 00:27:14

저도 대학 때 간질로 쓰러진 사람을 목격한적 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기도 하고 놀라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제 친구가 달려가서 손으로 입을 벌려서 뭘 물리더군요. 간질 환자는 혀를 깨물수가 있어서 그걸 방지해야 한다는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이내 간질 환자는 정상으로 돌아와서 안정을 취한후 갈길을 갔는데 제친구 손이 그 환자의 이에 씹혀서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제 친구처럼 남을 위해 희생을 고민 없이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하더군요.

전 그친구가 시켜서 발작하는 몸을 잡고 주무르는것만 겨우 했던거 같습니다. 전 친구라도 있었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다리 잡고 옮기신 용기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2019-03-16 00:57:38

자도 알바다닐때 3호선에서 어떤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남성분이 픽쓰러지는데 주변 분들이 잡아주고 의자에 앉혀주더라구요.. 아주 심각했던건 아니고 과로로 그런거 같았고 의자에 앉혀주는 정도의 간단한 해프닝이었지만 나름 인상깊은 장면이었습니다.

2019-03-16 01:42:07

아직은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2019-03-16 01:54:49

오늘 비도 오고
요근래 추운 날이었는데
정말 따뜻한 일 하셨습니다!

2019-03-16 06:43:12

좋은일 하셨네요
연예인 고위공직자 등 더러운 뉴스만 보다가
맘이 따뜻해지는 일을 보니 좋네요
할아버지도 얼른 나으시길

Updated at 2019-03-16 11:06:45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일 하셨네요!! 구급차가 15분 걸린 건 주변의 구급차가 다른 출동 했기 때문에 현장과 멀리에 있는 구급차가 출동해서 오래 걸린 거 같습니다.

WR
2019-03-16 12:13:46

네 안그래도 119랑 통화했던 여성분 하는 말을 들으니 구급차량이 다른데 출동나갔다거 방금 막 돌아와서 출발이 지연된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2019-03-16 11:37:13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따듯한 시민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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