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내 붙으따.'
저는 오른쪽 어깨가 매우 약합니다.
빚투코인으로 유명한 잠적 마닷 선생이 나혼자산다에 나와서 빨래를 간지나게 털길래 따라했다가 어깨가 빠진 적도 있고, 심지어 진공포장된 고기를 빨리 먹고 싶어 급하게 주욱 뜯다가 어깨가 빠진 적도 있습니다.(리얼 실화입니다.)
제 어깨가 팔순잔치를 해도 괜찮을만큼 약해진 이유는 농구 덕분입니다.(번외편으로 굽혀지지 않는 왼손 약지와 고질적 우측 대퇴부 햄스트링이 있습니다.)
이 농구라는 녀석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만, 그럼 지금도 안여돼(안경 여드름 돼지)로 살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후 그나마 다행입니다..
암튼 중학교 2학년 파오후시절, 너 힘 좋게 생겼다며
같이 농구하자고 했던 건우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착한 친구죠. 너 돼지라서 괜찮을 거 같다고 할 수도 있는데 힘 좋게 생겼다고 돌려서 말하는 배려.
중학교때부터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습니다.
그 이후 10년이 넘게 지났네요.
저는 일찍이 진로를 정해 고향인 부산을 떠났고,
건우는 계속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며 세무사 준비를 했습니다.
건우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깊은 고민을 얘기해도 묵묵히 들어주고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편안한 시몬스 침대 같은 친구였습니다.
한 달 전이었을까요. 건우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마 내 붙으따.' 짧은 문장이었지만 건우의 5년이 헛되지 않았음을 충분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전, 건우는 고맙다며 원주로 절 보러 왔습니다. 뭐가 고마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맙답니다. 그리고 지가 놀러와줬으면서 밥을 산답니다.
'다음에 부산 갈 때 얻어먹을테니까 오늘은 내가 축하의 의미로 살게.'
그러자 건우는 미안한 표정을 짓습니다.
예비 세무사라 그런지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는 결코 아닙니다. 이 친구는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항상 남을 배려하고 존중했으며 그런 태도가 굉장히 어른스러워서 티는 안냈지만 속으로 존경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찜닭을 먹고, 커피를 잘 못 마시는 건우를 위해 스타벅스에서 망고 바나나 블렌디드를 마시며 못했던 삶의(대부분 농구)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건우가 갈 시간이 다가왔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건우를 역 근처까지 바래다줬습니다.
'민창아, 고맙디.'
'그래 새꺄. 시험 붙었으니까 이제 살이나 좀 빼라. 돼지같은게.'
'중학교땐 니가 돼지였는데 이젠 내가 돼지돼뿟노 ㅋㅋ 알따. 담주부터 헬스할끼다. ㅋㅋ 고맙다. 덕분에 잘 먹고 간다.'
'담에 부산에서 또 보자. 잘 가래이.'
어깨를 약간 숙이고 터벅터벅 걷는 건우의 특유의 뒷모습을 보며 건우가 그간 짊어지고 있던 많은 짐들을 천천히, 하나하나씩 내려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건우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봤는데 자기 얼굴로 프사를 해놨네요. 여러분의 행복한 오늘을 위해 자체 모자이크했습니다. 건우는 매냐를 하는데요,
건우가 이 글을 본다면 프사를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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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줄이 핵심이군요
건우씨 저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