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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이야기 - 만년필 가지고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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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1-08 20:07:39

 

안녕하세요. 

 

 

만년필 이야기 시리즈로 뵙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만년필을 가지고 여행할 때, 특히 비행기를 타야할 때 생각해야 할 점들과 도움이 되는 악세사리들에 대해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0. 여행시 유의할점

 

만년필은 볼펜 등 다른 필기구에 비해 기본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필기구입니다.  이는 액체상태인 잉크를 사용하기 때문이고, 여행시에도 이 액체잉크를 사용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작용합니다. 우선 병잉크를 휴대하기 힘들다는 점이 있겠는데요. 잉크병은 보통 유리로 되어있어 무거운데다가, 혹여 가방 안에서 깨진다거나 하면 정말이지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잉크병이 보통 100ml를 넘지는 않으므로 기내에 반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입니다만 아무래도 불안하죠. 

 

또한 펜에 넣어놓은 잉크가 새어나올 수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일단 여행중에는 펜을 가방에 넣게 되고, 이 가방이 이동중에 이리저리 흔들릴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펜을 쥔 손을 턴 것과 같은 효과가 나게 되어 잉크가 조금 새어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이것 뿐 아니라, 비행기의 경우 이륙 후에 기압차가 나게 된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펜에 잉크를 채워놓았다고 해도 빈 공간이 있게 마련이고, 그 공간에는 공기가 차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이륙을 하게 되면 기내 공기압이 떨어지고, 그러면 펜 안쪽의 공기가 팽창하면서 잉크를 밀어내게 되죠. 이건 잉크 저장공간이 큰 펜일수록 더 효과가 큽니다. 

 

 

 

이러한 잉크 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론적으로는 펜에 잉크를 최대한 꽉 채우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도구 없이 펜에 잉크를 꽉 채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해결책은 아니구요. 또다른 방법으로는 흔히 펜촉을 위로한채로 펜을 세워놓으면 된다고 하는데, 뾰족한 금속 촉을 가지고 있는 만년필을 기내반입하는 것 자체가 좀 리스크가 있는 일이거니와 (경우에 따라 짐 검사에서 가방을 열어 펜을 보여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내에 가지고 탄다고 해도 펜을 계속해서 촉이 위로가도록 세워놓고 있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여행시에는, 기본적으로 펜을 비우고 잉크를 어떤 방식으로던 따로 휴대해서 여행지에 도착한 후 채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 소개해드릴 팁, 도구들은 그런 과정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1. 잉크 카트리지 사용하기

 

가장 일반적이고 접근성이 좋은 방법입니다. 모든 잉크 제조사들은 대부분 병잉크 뿐 아니라 잉크 카트리지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https://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3265498). 카트리지는 플라스틱 실린더에 잉크를 채워넣고 봉인한 형태인데, 카트리지/컨버터 펜의 경우 컨버터 대신 카트리지를 끼우는 방식으로 간편하게 장착하여 병잉크를 휴대해야하는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모든 펜과 모든 잉크 카트리지가 호환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흔히 국제공용규격이라 부르는 카트리지 규격이 있긴 합니다만, 펜 역시도 해당 규격의 카트리지를 꼽을 수 있어야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제표준 규격을 사용하는 몽블랑의 잉크 카트리지를 사용하고 싶다고 해도, 국제표준 규격을 사용하지 않는 파이로트의 만년필에는 끼울 수 없는 것이죠. 반대로 파이로트의 잉크 카트리지를 사용하고 싶다고 하면, 그 카트리지는 국제표준 규격이 아니라 파이로트의 독자규격이므로 파이로트의 만년필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조사별로 다르기는 합니다만, 보통은 병잉크로 판매되는 잉크의 종류가 카트리지로 판매되는 잉크의 종류보다 훨씬 많습니다. 거기다 카트리지/컨버터 방식이 아닌, 피스톤 방식 등을 사용하는 만년필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구요. 

 

 

2. 잉크 저장공간을 분리해놓은 방식의 펜 사용

 

일부 펜들의 경우, 잉크 저장방식의 설계단계부터 여행을 고려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래 사진의 Japanese Eyedropper 라고 불리는 방식의 경우, 기본적으로 eyedropper 방식이기에 펜 바디 전체를 잉크 저장공간으로 사용하는데요. 여기에 밸브를 달아서, 밸브를 닫으면 잉크가 담겨있는 바디쪽과 펜촉이 있는 그립부가 완전히 분리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동시에는 그 밸브를 완전히 닫아놓으면 잉크가 있는 공간이 완전히 봉인되므로 잉크가 새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죠. 이 방식은 주로 일본의 펜들에 많이 사용되어서 Japanese Eyedropper 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이 방식이 주로 100민원을 훌쩍 넘는, 아주 고가의 펜들에만 채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아주 최근에 자체 브랜드의 펜을 만들기 시작한 대만의 Opus 88 이라는 제조사에서 나온 Koloro 모델이 10만원대의 가격의 펜에서 Japanese Eyedropper 방식을 채용하고 있어 선택의 폭이 조금은 생겼습니다. 

 

 

 

 

또다른 방식으로는 예전에 소개해드린 적이 있었던 배큠 필러가 있습니다 ( https://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3265498) 전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대부분의 배큠 필러의 경우 double reservoir 방식이라고 해서, 배큠 필러에 사용되는 피스톤을 완전히 닫았을 때 Japanese eyedropper 의 밸브처럼 그립부를 완전히 막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똑같은 이유로 이동시에 잉크가 새어나오는 것을 막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들의 경우, 평소 필기시에 항상 밸브를 열어줘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사용시에는 바디부분에서 잉크가 지속적으로 그립부로 흘러가야 하니까요. 보통 약 1mm 정도 밸브가 위로 올라오도록 약간 열어서 쓰게 되어 있는데, 매 필기시마다 밸브를 열어주고 필기가 끝나면 다시 닫아줘야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사실 평소에는 밸브를 열어둔대로 보관을 해도 괜찮기는 한데, 미관상 좋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이구요. 

 

 

 

 

3. Visconti Travel Inkpod 과 Pineider Pen Filler

 

이 제품들은 여행시에 잉크를 효과적으로 저장하고 휴대할 수 있도록 고안된 악세사리들입니다. 원래는 Visconti Traveller's Inkpod 하나만 있었는데, 비스콘티의 설립자 중 하나인 Dante Del Vecchio 가 비스콘티를 나와 Pineider 로 옮기면서 비슷한 컨셉의 제품을 아주 최근에 출시하였습니다. 

 

이 제품들은 기본적으로 적은 용량의 잉크를 효과적으로 휴대할 수 있으며, 유리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어 무게가 가볍고 깨질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또한 좁고 긴 원통형이기에 적은 양의 잉크로도 펜을 충분히 꽉 채울 수 있구요. 

 

 

 

저는 위 사진에 보이는 비스콘티의 제품만 하나 가지고 있는데, 꽤 유용한 도구이기는 합니다만 그 만듦새가 좀 좋지 않은데다 기능에 비해 매우 고가 (우리돈 7만원대) 라는 점이 단점입니다. 또한 너무 폭이 좁은 실린더여서 제가 선호하는 그립부가 두꺼운 펜의 경우 펜이 들어가질 않는 경우가 있고, 카트리지/컨버터 펜의 경우 안쪽의 고무에 맞물린 그립부를 Inkpod 에서 빼려고 할 때 컨버터가 분리되고 그립부는 그대로 Inkpod 에 고정되어 버리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Pineider 의 제품은 상대적으로 저렴한데다 (우리돈 2만원대) 위 사진처럼 실린더 폭이 좀 더 넓어서 몽블랑 149 같은 두꺼운 펜과도 사용할 수 있어보입니다. 또한 펜을 고정해주는 고무부분의 탄성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컨버터 펜을 사용했을 때에도 컨버터만 빠지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면 실린더가 좀 두꺼워지면서 일반적인 만년필 케이스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 단점이구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즈음에 따로 쓰고 있는 과학철학 시리즈도 그렇고, 제 개인적인 일이 너무 바빠져서 잘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드문드문 올라오는 글에도 읽어주시고 댓글로 반가움을 표현해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역시 항상 그렇듯, 본문과 상관이 없는 내용이라도 만년필에 관한 모든 질문과 코멘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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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8-11-08 19:47:00

곧 해외 출장 가는데 좋은 정보네요.기내 반입이 안되거나 잉크가 셀 수 있다.. 감사합니다~

WR
2018-11-08 20:04:19

도움이 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저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제 친구가 한번 비행기 탑승 전에 휴대용 짐을 엑스레이로 검사할 때 붙잡힌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엑스레이로 보면 뾰족한 금속이다보니.. 만년필이라고 말을 해주고 펜을 꺼내서 보여주니 그냥 넘어가긴 했습니다만, 유쾌한 경험은 아니거니와 말이 잘 안통할 수도 있으니까요. 

 

가장 안전한 방법은 글에 써놓은 것 처럼 펜의 잉크를 완전히 비우고, 혹시라도 남아있는 잉크가 샐 수 있으니 펜을 휴지같은 것으로 한번 싸서 부치는 짐에 넣어 보내는 것입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는 여행이나 출장시에 그냥 펜케이스를 휴대용 짐에 넣고 병잉크를 따로 부치는 짐에 잘 포장해서 넣고 다니고 있습니다. 

Updated at 2018-11-09 00:54:28

뭐 셔츠 포켓에 펜을 꽂기만 한다면야 기압 차이에 의한 잉크가 새는것을 막을수 있지만 어디 그게 쉬울까요. 그래서 대만제 Japanese eye dropper및 트위스비 Vac은 정말 만년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의 한수 같습니다.

WR
2018-11-09 02:37:18

보면 대만에서 가성비 좋은 만년필들을 많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 보면 품질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지만 딱 사용자의 니즈를 잘 파악해서 적당한 가격에 판매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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