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 역대 최고 투수의 매우 특이한 커리어

1952년 2월 대구에서 태어남. 본명 남우식.
동기들보다 야구를 늦게 시작함. 경북중학교 2학년부터 투수를 맡음.
중학교 3학년 시절 경북중학교는 6개 전국대회 중 5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함.
1969년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함. 1학년부터 에이스를 맡아 황금사자기에서 6경기를 완투함.
경북고 2학년 시절에는 투타에서 발군의 실력을 과시함. 대통령배 우승, 화랑대기 우승.
2학년 시절 대통령배 우승 시 최우수선수, 최우수투수 그리고 타격상을 휩쓸음.
경북고 3학년 시절 전무후무한 활약을 펼침. 그 때 경북고는 대통령배, 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화랑대기, 문교부 장관기까지 모두 제패하며 전무후무한 6관왕을 달성함.
경북고에는 황규봉, 이선희가 같이 있었지만 남우식은 압도적인 원맨 에이스 역할을 수행함.
제1회 봉황대기에서는 무려 7경기(전경기)를 완투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끔.
경북고 3학년 때 남우식의 기록은 19승 1패 182이닝 평균자책점 0.34 임. 패한 경기도 패자부활전을 거쳐 경북고가 우승함(청룡기).
고3 때 한국 대표선수로 일본을 방문해 한일 고교야구전을 치름. 남우식은 3경기 등판에서 3경기 완봉승을 거둠. 일본에서 스카웃 제의가 물밀 듯이 옴.
한양대에 진학 후 고등학교 시절 무리한 등판의 후유증이 나타남.
대학졸업 후 롯데에 입단하고 공군 야구팀인 성무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지만 어깨가 많이 망가진 상태였음.
경북고 시절 은사인 서영무 감독이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스 초대 감독으로 부임함.
서영무 감독은 남우식에게 삼성라이온스 입단을 끈질기게 구애함.
동기들이 모두 프로에 진출했지만 남우식은 롯데에 남아 롯데햄우유에서 밑바닥부터 영업직 샐러리맨 커리어를 시작함.
자신보다 다섯 살 어린 동생들을 선배로 깎듯이 대하며 하나 둘 씩 영업일을 배워나감.
남우식이 14년동안 영업에서 좋은 실적을 보이자 본사에서는 그의 보직을 관리분야로 옮김.
롯데우유가 푸르밀로 회사명을 바꿈. 남우식은 경영지원실 상무로 승진함
2009년 남우식은 직장생활 28년만에 푸르밀 대표이사에 취임함.
2016년 현재까지도 그는 푸르밀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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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대단하네요. 역시 한 군데서 크게 성공한 사람은 다른 분야도 잘할 가능성이 높은거 같아요!
근데 도대체 Damon님은 어떤 분이시길애 이렇게 많은 정보를 자세히 알고 계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