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대 이세돌 2국 감상
그래도 바둑을 약간이나마 이해하는 터라 잠깐 짬을 내서 알파고 대 이세돌 2국 감상을 써봅니다. 바둑을 모르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1. 우변에 알파고가 어깨 짚어갔던 수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보통 4선에서부터 집을 만들어주면 불리하다는 게 바둑계의 정설이었는데, 알파고는 중앙 집에 대한 uncertainty를 확실히 사람보다 낮게 인식하는 듯하네요. 이세돌 9단이 그냥 우변을 주욱 밀어 실리를 땡기고 싸웠으면 어땠을지? 장고 끝에 위로 밀어간 수는 악수로 보입니다.
2. 이세돌 9단이 불리함을 느끼고 상변에 쳐들어갔을 때 알파고가 좌변을 씌우는 수는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그 수를 본 순간 1국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른 싸움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어요. 1국은 어어 하는 사이에 한 두 번의 실수로 이세돌 9단이 무너졌다면, 2국에서는 이세돌 9단의 승부수를 상대로 일견 유려하게까지 대응하는 알파고의 대응에 절로 감탄이 나오더군요.
3. 알파고는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바둑은 부분적인 손해를 보면서라도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있기에, 이런 멋진 수를 끌어내려면 최소한 승부가 아직 50대 50이라는 계산을 알파고에게 안겨줘야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세돌 9단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세돌 9단이 잘하면 잘할 수록 알파고의 이상하지만 이상적인 수를 많이 보게 될 거에요. 더욱 더 이세돌 9단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4. 반면 종반에 중앙에서 대놓고 4집을 손해보는 알파고의 수는 확실히 인간미가 배제된 기계의 플레이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잘못된 착수에서 이런 것을 느꼈던 건, 4집 따위 줘버려도 승리는 100% 변함이 없다고 알파고의 계산이 나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죠. 사람이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다는 배려 속에서 이러한 수는 절대 나올 수가 없어요. 판을 단순화 하기 위함도 아니고 (상변 6점 먹히는 게 더 복잡한 변화) 그냥 승부에 상관없다고 둔 건데 마치 농구에서 4쿼터 1분 남기고 20점 차라고 그냥 몇 번 수비 안 한 거나 같습니다. 이세돌 9단이 굴욕감을 느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죠. 게다가 사람은 자신의 계산이 완벽하지 않음을 알기에 그런 수를 상대로 또 작은 희망을 가지고 매달려야만 하거든요. 괜히 기계에게 놀림받은 느낌이네요.
5. 초반에 보지 못한 수를 둔다도 1국의 흑 7에서 보듯 실패. 복잡하기보다 단단하게 두며 알파고의 실수를 기다린다도 2국에서 실패. 3국부터는 그냥 이세돌의 수를 둬야 할 듯 합니다. 일단 중반에 중앙에서 이세돌이 마늘모로 지키며 흑의 약점을 동시에 엿본 수는 아주 좋아보였어요. 물론 알파고가 그 이후의 진행을 모두 읽었기 때문에 양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세돌이 그 때 초읽기에 몰리지만 않았어도 결과가 좀더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가져봅니다. 결론은 이세돌은 승리가 아니라 좋은 기보를 남긴다는 생각으로 남은 3국을 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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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4번은 머였을까 싶습니다
논리적으로 이기고 있으니 손해 봐도 되라는 로직이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