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 저는 미국의 이런 점이 부럽습니다.
이번 글은 시리즈 중에서 첫 번째 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부러운 점에 대해 시리즈 별로 하나씩 짚고 넘어갈 생각입니다. 미국은 문제점도 많은 나라이지만 오늘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부러운 점에 대해 글을 씁니다.
미국이 우리나라 그리고 독일 스웨덴 등 서유럽 국가와 크게 다른 점들 중 하나는 계층이동이 가능한 열린사회라는 데 있습니다. 미국의 부호 리스트를 보면 최상위 20위중에 자수성가한 인물이 70%를 차지합니다. 아래 2015년 탑텐 리스트 중에서도 코흐 형제와 월튼을 제외한 7명이 자수성가형 부자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부자인 빌 게이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파헤치면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다른 점들을 짚어보겠습니다. 단 하나의 예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시사점들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1955년생인 빌 게이츠는 요샛말로 금수저입니다. 아버지는 시애틀의 저명한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부유한 은행가의 딸이었습니다. 빌의 부모는 우리나라의 기준으로도 극성스러울 정도로 아들에 대한 교육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빌은 중학교 시절인 1968년부터 대학에 입하할 때까지 5년 동안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접속하며 쉬지 않고 프로그래밍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수학과 프로그래밍에 놀라운 재능을 보인 빌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률가가 되기 위해서 하버드 대학교 예비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곧바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수학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재능을 발휘해서 당시까지 미해결이던 이산수학 문제의 해법을 제시해서 SCI 학술지에 실었고, 그 논문의 우수성은 지금까지도 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입니다.
천재수학자로서의 미래가 확고해 보이던 19살의 빌 게이츠는 같은 해에 기존 프로그래밍 언어인 BASIC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서 글자 그대로 초보자가 소형컴퓨터에서 사용이 가능한 언어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때마침 기적 같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1975년에 기본 가격이 397달러의 가정용 조립식 미니컴퓨터 키트인 알테어 8800 (Altair 8800) 이 시장에 등장한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알테어 8800은 빌 게이츠 뿐 아니라 그와 동갑인 스티브 잡스의 인생도 통째로 바꾼 희대의 발명품이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재빨리 알테어 8800의 제조회사 MITS의 사장 에드 로버츠를 방문해서 알테어 8800에 자신이 개발한 BASIC 키트를 옵션으로 탑재시키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에드 로버츠가 내건 계약조건은 빌 게이츠와 동료들이 MITS에 머물며 BASIC 키트의 작동에 대한 기술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빌은 하버드를 한 학기 휴학하며 MITS가 소재한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머물며 BASIC 키트의 테크니컬 서포트와 서비스를 담당했습니다.
다음학기에 빌이 하버드에 복학했을 때 에드 로버츠는 빌에게 긴급하게 전화했습니다. 네가 없으니까 BASIC 오작동에 대응할 방법이 없고 소비자의 클레임이 끊이지를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에드는 빌에게 계약을 파기하거나 앨버커키에 계속 머물거나 택일하라는 최후통첩을 내렸습니다. 하버드에서 앨버커키는 비행거리로 3700km가 넘기에 두 곳을 매일같이 오가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빌은 부모와 이 난감한 상황에 대해 상의했습니다.
빌의 부모는 아들이 하버드를 중퇴하고 앨버커키에 작은 회사를 차리는 것에 적극 동의했습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너는 능력이 있고 우리는 돈과 인맥이 있는데, 몇 번 실패하는 건 길게 생각하면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게 빌 게이츠 부모의 생각이었습니다. 빌 게이츠의 친구 폴 앨런과 스티브 발머도 함께 하버드를 중퇴했습니다. 그들도 부모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한 번에 사업에 성공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버드를 중퇴한 직후 그 셋은 앨버커키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습니다. 25년 후 세 명은 모두 세계의 부자 순위 top 10에 진입합니다. 2000년 세계 부자순위는 빌이 1위, 폴이 3위 그리고 스티브가 8위였습니다. 폴은 1988년부터 지금까지 쭉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의 구단주이고, 스티브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주주이며 2014년부터 LA 클리퍼스의 구단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와 미국의 큰 차이점은 우리에게는 실패를 딛고 재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나의 기준에서 한 차례만 낙오되어도 그게 낙인이 돼서 평생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패자부활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안전한 진로를 선택하려 합니다.
우리나라는 벤처 창업을 정부 차원에서 독려하면서도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벤처 창업자의 95%가 1~2년 안에 실패하는 시스템을 방관하고 있고,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실패를 값진 경험삼아 재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너무 미비합니다. 망한 벤처회사의 CEO에게는 정부로부터 받은 창업자금이 평생 갚아야하는 공포의 빚으로 돌변합니다.
재기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 모두가 대학입시에 목숨 거는 사회가 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승부가 어린 나이에 치러지는 것입니다. 진학한 대학에 따라 이후 인생의 조감도가 미리 만들어진 듯 펼쳐집니다.
수능의 원래 목적은 대학에서 더 깊게 학문을 공부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인데 반해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더 깊은 학문으로 이어지도록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자체에 최적화된 공부를 하기 때문에 그 많은 교육비를 들여 대학에 진학해도 그들의 실제 학력은 30년 전 신입생들만도 못한 희극 같은 상황이 바로 우리 현주소입니다. 학생들이 가장 큰 비중으로 공부하는 수학의 경우만 해도 입시준비를 위한 기계적 계산위주의 수학은 대학에서 배우는 원리와 개념 위주의 수학으로 전혀 이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느 부모님들도 빌 게이츠의 부모처럼 전도 찬란한 아들이 하버드(or 서울대)를 중퇴하고 외진 벽촌에서 실패하기 딱 알맞은 일을 하겠다는 것을 불허할 겁니다. 그 대신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가라. 그런데 가려거든 내 시체를 밟고 가라.” 제가 경험한 바로는 우리나라의 경제력 있는 부모님들은 성인 아들이 독립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아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 당신들의 뜻대로 조종하길 원하십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런 부모님들은 아들딸이 창의적인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겁니다.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에서 창의적인 인재를 강조하고 특별 대접하는 분위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창의성과 실패가 동의어는 아닙니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절대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해야 하는 사회에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창의적 인재가 나올 것을 기대하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다시 빌 게이츠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사업 초창기에 빌 게이츠는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뉴욕 사교계 마당발 출신 어머니는 빌이 사업에서 난관에 처할 때마다 그림자 구원투수가 되었습니다. 정글의 킬러 본능을 지닌 빌은 게리 킬달과 IBM이 연달아 자살골을 넣은 등 행운까지 겹쳐서 라이벌들을 무자비하게 제압하며 차츰 업계의 정상에 도달해서 37살이던 1992년에 세계 제 1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빌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의 모든 소프트웨어와 지적재산권을 석권할 때까지 쉬지 않고 전진하려던 사람이었습니다.
듀크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1년 만에 마친 23살의 멜린다 프렌치는 1987년에 떠오르는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했습니다. 입사 후 1년 만에 CEO였던 빌 게이츠와 사귀는 사이가 됩니다. 회사 내에서 이렇게 6년을 사귀다 둘은 결혼에 골인하고 그 이후부터 빌 게이츠는 삶의 모든 게 서서히 달라졌습니다.
빌 게이츠가 멜린다의 어떤 점에 그렇게 매혹 되서 삶의 방향까지 바꾸게 되었는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사람들 말로는 멜린다의 미모 때문은 아니라고 합니다. 멜린다는 빌이 무자비한 사업가에서 만인의 존경을 받는 자선가가 되도록 서서히 영향력을 행사해서 2000년에 자선재단인 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세우게 했고 빌이 사업에서 조기에 은퇴하도록 조언했습니다. 여성 배우자가 사람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놀랐고, 멜린다야말로 진정 위대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빌 게이츠는 그 재산에 지금까지 40조원이 넘는 재산을 기부했고, 그의 관심은 기업으로 세계를 석권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제3세계 어린이들이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기부의 목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을 대부분 팔아 지금은 스티브 발머에게 최대주주 자리를 내줬지만, 다른 투자에 귀신같은 능력을 발휘해서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했지만 그의 재산은 줄지 않고 여전히 세계 1위 부자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가 기부할 돈이 많아지는 건 인류를 위해 좋은 소식입니다. 비록 마이크로소프트는 빌의 은퇴 후 최첨단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잃었지만 빌은 새 삶을 찾았습니다.
빌 게이츠처럼 사업에서 일찍 은퇴해서 자선가의 길을 걷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의 최고 부자들은 대부분 큰돈을 기부하는 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점잖은 방법으로는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빌 게이츠처럼 때로는 악랄하고 잔인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최고 부자로 인정받은 후에는 그 돈을 남을 위해 정승같이 써서 존경받는 욕구를 충족시킵니다. 이게 바로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많은 결함 속에서도 세계를 이끄는 기본 동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미국사람은 부자를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공평하고 열린 시스템을 믿습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성공의 기회는 공평하게 온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은 성공한 사람들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 성공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고 자선사업을 함으로써 존경을 받습니다. 저는 미국의 이런 시스템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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