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학고 세명의 천재들
아래 댓글에서 본의아니게 제 출신학교를 밝혔는데,
이전 글을 보니 논문없이 카이스트 교수되신 분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옛생각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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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닐때 서울과학고에는 세명의 전설적인 천재 선배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21세기에 영재들의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붐이 불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세명의 천재 모두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서 2년 연속으로 금메달을 따서 국제 올림피아드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세명 모두 3학년까지 다녔고 의대의 구애를 뿌리치고 서울대 수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이 세명의 이름은 신석우, 한린 그리고 최서현입니다.
신석우 현재 버클리대 교수는 서울대 97학번으로 우리나라가 낳은 최초의 영재라는 소리를 듣던 분입니다. 신석우는 국내 학생중 현재까지 유일한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IMO) 만점자입니다. 두개의 금메달과 더불어 1학년때 은메달도 따서 국내 최다 메달수상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에 진학했고 카투사로 군복무를 마치고 하버드로 유학을 떠나서 페르마 마지막 정리를 해결한 리처드 테일러의 제자로 들어갔습니다. 지금은 자타공인 한국국적을 지닌 최고의 수학자로 인정받습니다. 작년에 서울에서 열린 국제수학회에 앞서 기자들이 신석우 교수의 4년후 나이가 40이 안되니까 수상 가능성을 물었습니다. 신교수가 대답하길 본인 같은 수학자가 40명은 있는 저변이 되야 필즈상이 나올거라 했답니다.
신석우 교수는 유치원때부터 천재로 알려져 서울대 교수에게 개인지도를 받은 사람입니다.
신석우보다 더 뛰어난 천재는 서울대 2000학번인 한린 선배입니다. 한린 선배는 천재중에 천재로 학교 선생님이나 서울대 교수 모두 입을모아 한린은 못해도 노벨상은 받는다고 장담했던 천재였습니다. 게임도 엄청 잘해서 스타로 당대3 이기석과 임요환을 꺾었다고 합니다. 3년만에 수학/물리 복수전공으로 서울대를 학점 4.21 수석으로 졸업했고, 대학교 1,2,3학년 시절 모두 대한수학회 주최 대학생 수학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학교다니면서 수학경시대회 우승한게 50회가 넘는다네요. 집이 가난해서 학원선생과 과외선생을 하면서 밤을 보냈답니다. 졸업후 수학전공을로 하버드대학교에 유학갔습니다.
그런 한린 선배가 유학가고 5년후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논문이 없다고 해서 모두 놀랐습니다. 인하대에서 특례요원으로 채용해서 연구하던 중에 박사학위가 없다는 게 밝혀져서 난리가 났었습니다. 도망치듯 특례요원을 마치고 다시 하버드에 갔는데, 아직 학위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습니다.
세 번째 천재가 바로 논문이 없이 임용된 카이스트의 최서현 교수입니다. 이분은 천재에 성품도 좋고 외모도 예뻐서 모두의 사랑과 흠모를 받던 분입니다. 그분이 대학재학시절 모교에 올림피아드 지도하려 왔을 때 봤는데, 아우라를 넘어 그분의 등뒤에서 오로라가 펼쳐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서현 교수는 한린 보다 1년 후배인 서울대 2001 학번으로 고2때 한린 선배와 같이 올림피아드에 출전했습니다. 둘다 금메달을 땄는데 최서현 교수의 성적이 더 좋았답니다. 국제 올림피아드 금메달은 약 30명에게 주어지니까 국내에서 1등이 아니어도 받알 수 있습니다. 최서현 교수는 고3때에도 국가대표 에이스를 맡으며 또한번 금메달을 받아 아직까지 국내 여성 중에 유일한 금메달 2관왕입니다. 최서현 교수는 학부 졸업후 하버드로 유학가서 신석우 교수와 함께 리처드 테일러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테일러 교수가 신석우 교수만 편애해서 마음 고생이 많았다고 합니다.
최서현 교수가 5년만에 학위를 끝내자 카이스트 서남표 당시 총장이 최교수를 적극적으로 스카웃해서 논문없이 카이스트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논문을 출판하지 못했는데, 동료와 선배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눈이 높고 정직해서 어려운 타픽 아니면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별볼일 없는 논문는 끝까지 안쓰겠다는 마음가짐으로요. 그래서 학회 발표할 때도 다른 사람이 얻는 결과로 발표했고, 발표수준이 매우 높았답니다. 카이스트와 계약할 때 조교수 6년 계약기간 동안 부교수로 승진하지 못하면 계약만료가 되는데, 결혼 후 육아유칙으로 1년을 더 벌었지만 아직도 승진에 필요한 논문을 쓰려면 멀었고, 조만간 카이스트를 떠나야 할거 같다고 동료와 선배들이 이야기합니다. 정말 똑똑하고 훌륭한 분인데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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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와 절개가 있으면 그로인해 생기는 융통성이 없음은 당연한 결과이지요. 한국에 이런 천재들이 동시대에 줄을지어 있었다니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성공은 아마 어렵지 않을까요? 한국에서의 성공한 삶은 저들의 기준과 논리로는 생각하거나 받아들이기 이미 힘든 것이 상식으로 굳어져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