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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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4 14:47:17
평소에도 몸이 안 좋으셨던 관계로 이번에도 그냥 그런 줄 알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외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려가셨다고 했지만, 이미
군사학을 듣고 있던 차라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연락이 오더군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솔직히 말해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냥 침묵만 지켰을 뿐, 딱히 눈물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그냥 실감이 안 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할머니가 마지막에는 호흡기를 떼시고 자가호흡을 하
실 수 있으셨고, 가시는 순간 큰 미소를 지으시며 편안하게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외가로 내려갔습니다. 이미 빈소가 차려져 있더군요.
마련되어 있던 상복으로 갈아입고 문상객 분들을 맞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눈이 퉁퉁 부어 계시던 어머니와 이모 분들을 위로해드리며 외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보
았을 때, 두 달 전 제가 하계훈련을 마치고 바로 찾아뵈었던 외할머니가 이제는 움직이지도 않
으시고, 이 세상에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허무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그냥 멍하니 기계적으로 문상객 분들을 대접하는 게
차라리 편하다는 생각도 나더군요.
다음날, 빈소를 정리하고 영안실로 할머니의 관을 운구하러 내려갔습니다. 이미 작은외할머니,
이모, 그리고 어머니들은 울고 계셨고 아버지와 이모부들, 그리고 유일한 집안의 상주인 외삼촌
분들도 무거운 표정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맏딸이고, 외가를 이을 분이 외삼촌 한 분뿐이
신지라 실질적으로는 제가 맏손자나 다름없던 외가였죠. 때문에 다른 집안 어른들과 함께 외할
머니의 관을 운구하도록 외가에서 배려해 주셨습니다.
관을 들었을 때, 그 묵직함에 나오지 않던 눈물이 나왔지만 어머니가 울고 있기에 저마저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냥 화장터에 할머니의 유체가 들어가실 때, 어머니의 어깨를 잡아드리
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화장터까지 왔던 차 안에서 혼자 조용히 울 수
있었죠.
할머니를 화장해서 보내드리고, 화장한 후 남은 유골은 납골당에 안치해 드렸습니다.
많은 생각이 났습니다. 하계훈련을 마치고 갔을 때, 일어서지도 못하시는 할머니께 다음에
올 때는 백만촉광 다이아를 어깨에 달고 찾아뵙겠다고 마지막에 손 잡아드렸는데...... 이제는
지키지 못하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할머니, 많은 손자들 중 유일하게 아명을 지어 주시고 항상 그 이름으로 불러 주셨던 할머니......
항상 부족한 손자를 위해 기도하고 편지써 주셨던 할머니...... 젊을 적에는 1남 5녀 자녀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우시고, 손자들을 자식같이 키워주시고, 노년에는 온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
일생 동안 한시도 편할 날이 없으셨던 할머니......
큰 웃음 지으시면서 편안하게 가셨다니, 분명히 모든 고통 벗어나시고 바라시던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계실 것이라고 믿고 바랍니다......
3달만 조금 늦게 가셨어도 큰손자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실 수 있으셨을 텐데, 그 약속을 이루어
드리지 못하는 것만이 안타깝고 슬플 뿐입니다.
할머니, 돌아가셔서나마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앞으로 있을 임관종합평가 무사히 수료해서
할머니가 비록 직접 보시지는 못해도 육군 장교정복을 차려입고 할머니 앞에서 멋진 경례를
붙일 것이라고 다시금 하늘나라에 계신 할머니께 혼자 약속드려 봅니다.
할머니, 편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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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