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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F1에서 달린 아버지와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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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4 22: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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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이렇게 시간이 쫓겼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바빠서 글쓸 틈이 없네요. 

 이번에는 F1에서 대를 이어 커리어를 이어나갔던 드라이버들에 대해서 다뤄볼까 합니다.

 그럼 출발해 보겠습니다.

 

 시작하며

 

 모든 스포츠에서 천부적인 재능은 스포츠 선수의 능력과 커리어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그 재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가 혈통입니다.

 각 종목마다 아버지-아들의 2대 혹은 3대에서 4대까지 같은 종목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있는데, F1도 다른 스포츠들과 마찬가지로 대를 이어 서킷 위를 달려온 드라이버들이 있어왔습니다.

 오늘은 F1에서 달렸던 부자 드라이버들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드라이버 목록은

  | https://drivetribe.com/…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1. 마리오 안드레티 & 마이클 안드레티

 

 

마리오(오른쪽) & 마이클 안드레티(왼쪽)

 

 마리오 안드레티 (1968 ~ 1982) - 131 Races, 12 Wins, 19 Podiums, 18 Pole Positions, 10 Fastest Laps, 1 Champ

 마이클 안드레티 (1993) - 13 Races, 0 Win, 1 Podium, 0 Pole Position, 0 Fastest Lap, 0 Champ

 

 F1에서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미국 출신 드라이버라는 평가를 듣는 마리오 안드레티는 로터스, 마크, 페라리, 알파로메오, 윌리엄스등 여러 팀을 거치면서 인상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로터스의 전성기였던 1977년 챔피언십 3위에 이어 이듬해인 1978년에는 마침내 챔피언을 차지하며 그의 F1 커리어의 최고를 찍었습니다.

 미국 드라이버답게 인디카와 미국의 오픈휠 레이싱에도 꾸준히 참가하면서 1969년 인디 500 우승, 1984년 인디카 시리즈 챔피언등 이쪽에서도 화려한 업적을 쌓았습니다.

 다만 1995년 르망 24시에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2위를 기록하며 트리플 크라운 (F1 챔피언, 인디 500 우승, 르망 24시 우승)의 문턱에서 주저앉은 것은 아쉽습니다.

 인디카 시리즈에 참가하던 시절 자신이 만들었던 안드레티 레이싱 팀을 은퇴후에도 유지하며 현재까지 의욕적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마리오의 아들인 마이클 안드레티의 F1 커리어는 초라한 편입니다.

 F1 밖에서는 1991년 데이토나 24시 3위, 같은해 인디 500 2위를 차지했지만 F1에서는 단 한시즌, 그것도 시즌 중간까지 밖에 달리지 못했습니다.

 1993년 맥라렌 소속으로 F1에 데뷔했지만 당시 맥라렌은 액티브 서스펜션 개발이 늦어지며 팀의 주축이었던 아일톤 세나가 윌리엄스와 시즌 후 이적에 합의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거기다 팀의 루키였던 미카 하키넨과의 파워 게임에서 밀려나며 이탈리아 그랑프리 3위를 마지막으로 F1 커리어를 접고 말았습니다.

  이후 인디카 시리즈로 복귀한 마이클은 2007년까지 인디카 시리즈에 참가했고 인디카 시리즈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안드레티 레이싱 팀의 운영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2. 잭 브라밤 & 개리, 데이빗 브라밤

 

 

잭(왼쪽) & 개리(오른쪽) & 데이빗(가운데) 브라밤

 

 잭 브라밤 (1955 ~ 1970) - 128 Races, 14 Wins, 31 Podiums, 13 Pole Positions, 12 Fastest Laps, 3 Champs

 개리 브라밤 (1990) - 2 Races, 0 Win, 0 Podium, 0 Pole Position, 0 Fastest Lap, 0 Champ

 데이빗 브라밤 (1990, 1994) - 30 Races, 0 Win, 0 Podium, 0 Fastest Lap, 0 Champ

 

 아버지인 잭 브라밤은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자신이 직접 팀을 만들어 드라이버로 F1에 참가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든 브라밤 팀은 오랜 시간 F1에서 성공적인 팀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쿠퍼를 시작으로 롭 워커 레이싱, 자신이 만든 브라밤 팀을 거쳐오며 쿠퍼팀에서 1959, 1960년 2년 연속으로 챔피언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달렸습니다.

 1962년 자신이 직접 브라밤 팀을 만들어 F1에 참가하기 시작했지만 첫 4년 간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1963년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거둔 2위가 최고 성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966 시즌 3번째 레이스였던 프랑스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영국, 네덜란드, 독일 그랑프리까지 4연승을 휩쓸며 경쟁자였던 존 서티스와 요헨 린트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챔피언을 차지했습니다. 이듬해에도 챔피언십 2위를 차지한 잭은 F1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970년 1승과 함께 챔피언십 5위를 차지하며 F1 커리어를 마무리 했습니다.

 은퇴후 잭은 호주로 이사해 농장을 꾸리며 살아갔습니다. 이는 잭의 아들들이 모터 스포츠와 멀어지게 하려는 그의 부인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잭의 부인이었던 베티의 뜻과 달리 아들 3명 모두 드라이버가 되었고 특히 둘째였던개리와 막내 데이빗은 F1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이었던 개리는 1989년 브리티시 포뮬러 3000 챔피언을 차지하며 F1에 데뷔했습니다. F3 시절에는 아버지가 만들었던 브라밤 팀에서 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 신생팀이었던 라이프 레이싱 엔진 팀에서 2경기 모두 프리 퀄리파잉마저 통과하지 못하면서 팀에 환멸을 느끼고 그대로 F1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F1을 떠난 개리는 1991년 형인 조프와 함께 세브링 12시간 내구 레이스에 참가해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는데 2016년에 2009년 당시 6살이었던 어린이를 성추행 및 강간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은끝에 18개월 형을 받으며 아버지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말았습니다.

 

 막내인 데이빗은 1989년 브리티시 F3 챔피언과 마카오 그랑프리 우승을 거두며 1990년 브라밤 팀 소속으로 F1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경기만 완주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1년 만에 팀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1994년 심텍 팀 소속으로 F1에 복귀했지만 팀은 또 한명의 드라이버였던 롤란드 라첸베르거가 산마리노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사고로 사망하는 등 최악의 분위기였고 데이빗 또한 시즌 6경기 완주에 그치면서 노포인트로 F1 커리어를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GT 레이스쪽으로 방향을 바꾼 데이빗은 1996년 일본 GT 챔피언, 1999년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2위, 2003년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3위, 2008년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P2 클래스 3위, 2009년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P1 클래스 챔피언, 2010년 아메리칸 르망 시리즈 LMP 클래스 챔피언을 차지하는 등 드라이버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3. 에머슨 피티팔디 & 그리스티안 피티팔디

 

 

에머슨(왼쪽) & 크리스티안(오른쪽) 피티팔디 

 

 에머슨 피티팔디 (1970 ~ 1980) - 149 Races, 14 Wins, 35 Podiums, 6 Pole Positions, 6 Fastest Laps, 2 Champs

 크리스티안 피티팔디 (1992 ~ 1994) - 43 Races, 0 Win, 0 Podium, 0 Pole Position, 0 Fastest Lap, 0 Champ

 

 F1 팬들이 일컬어 '위대한 시대'라고 부르는 1980~1990년대의 바로 앞 세대에서 달렸던 가장 뛰어난 F1 드라이버 중 한명이었던 에머슨은 피케 - 세나 - 바리첼로 - 마싸로 이어지는 브라질 드라이버 라인의 선배격 드라이버입니다.

 에머슨은 로터스, 맥라렌을 거치며 1972년 로터스에서, 그리고 1974년 맥라렌에서 챔피언에 오르며 F1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1973, 75년에도 챔피언십 2위를 차지하며 도합 4년을 F1에서 정상을 달렸습니다.

 브라밤과 마찬가지로 1976년부터 피티팔디 팀을 만들어 직접 F1에 참가했지만 이후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남기지 못했고 1980년을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이유로 33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피티팔디 팀을 운영했고 1982년 피티팔디 팀이 F1에서 철수한 이후로는 챔프카 월드 시리즈 (CART), 인디 500, 데이토나 24시, WEC등 각종 카테고리에서 2014년까지 드라이버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에머슨의 아들인 크리스티안은 1992년 미나르디 소속으로 F1에 데뷔해 시즌 1포인트를 따냈습니다. 그는 데뷔당시 최연소 드라이버였습니다. 이듬해에도 5포인트를 따냈지만 시즌 2경기를 남겨놓고 팀에서는 그와의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이듬해 풋워크 팀으로 자리를 옮긴 크리스티안은 두번의 4위를 거두며 시즌 6포인트를 거두었고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재능을 다른 곳에서 시험하고 싶다며 F1을 떠났습니다. 이후 챔프카 월드 시리즈, A1 그랑프리, 브라질 스톡카 레이스, 데이토나 24시, 르망 24시, WeatherTech 스포츠카 챔피언십 등에 참가하며 여러번의 우승과 챔피언을 거머쥐며 드라이버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4. 그레이엄 힐 & 데이먼 힐

 

 

그레이엄(오른쪽) & 데이먼(왼쪽) 힐

 

 그레이엄 힐 (1958 ~ 1975) - 179 Races, 14 Wins, 36 Podiums, 13 Pole Positions, 10 Fastest Laps, 2 Champs

 데이먼 힐 (1992 ~ 1999) - 122 Races, 22 Wins, 42 Podiums, 20 Pole Positions, 19 Fastest Laps, 1 Champ

 

 그레이엄과 데이먼 힐은 부자 모두가 F1에서 챔피언을 차지한 두 가족중 한 곳입니다. (나머지는 밑에서 소개할 케케 & 니코 로스버그)

 1960년대를 수놓은 명 드라이버 중 한명으로 꼽히는 그레이엄은 2번의 F1 챔피언과 더불어 모터 스포츠 역사상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트리플 크라운 (F1 챔피언, 인디 500, 르망 24시 우승)의 유일한 주인공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업적은 어마어마합니다.

 로터스, BRM, 브라밤, 힐 팀을 거친 그레이엄은 1962년 BRM 소속으로 첫 F1 챔피언을 거머쥐었습니다. 이후 3년 연속으로 챔피언십 2위를 차지하며 챔피언 문턱에서 주저앉은 그레이엄은 1968년 로터스 소속으로 두번째 F1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이후 브라밤 팀을 거치고 1974년 자신이 직접 팀을 만들어 F1에 참가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남기지 못하고 1975년 F1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첫 F1 챔피언을 차지한 후 잠시 슬럼프를 겪고 있던 1966년 인디 500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한 그레이엄은 브라밤 팀에서 부진을 겪고 있던 1972년 마트라-심카 쉘 팀 소속으로 참가한 르망 24시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완성했습니다.

 이런 대단한 업적을 쌓은 그레이엄의 말년은 너무나 불운했는데 1975년 자신이 몰던 경비행기가 안개속에서 추락하며 46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힐 팀을 운영하면서 막대한 자산을 썼던 바람에 그의 가족들은 어렵게 생활해야 했습니다.

 

 아들인 데이먼은 드라이버로써의 재능은 가지고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로 인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터 스포츠에 대한 피는 속이지 못했는지 23살이라는 많은 나이에 드라이버 생활을 시작했고 결국 1992년 브라밤 팀 소속으로 F1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다른 드라이버들 같으면 황혼기로 접어들 32살이었습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브라밤 팀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윌리엄스 팀에서 자리를 제안하며 데이먼은 1993년 윌리엄스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엄스로 옮기자마자 가지고 있던 잠재력과 윌리엄스의 강력한 레이스카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1993년 챔피언십 3위에 올랐고 세나가 이몰라에서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1994년에는 최악이었던 분위기를 극복하고 챔피언십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해는 액티브 서스펜션 (전자장비를 이용해 높낮이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서스펜션, 윌리엄스가 가장 먼저 선보였습니다.) 이 금지되면서 윌리엄스가 막대한 타격을 입었던 해였기 때문에 데이먼의 2위는 챔피언보다 더욱 값진 것이었스비다.

 이후로도 승승장구한 데이먼은 마침내 1996년 챔피언에 오르며 F1 커리어에 정점을 찍게 됩니다. 이듬해 애로우즈 팀으로 옮겼지만 성적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1998 조던 팀에서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999 시즌이 끝난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ITV와 Sky Sports의 해설을 맡는등 F1과의 인연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5. 얀 마그누센 & 케빈 마그누센

 

 

얀(오른쪽) & 케빈(왼쪽) 마그누센

 

 얀 마그누센 (1995 ~ 1998) - 25 Races, 0 Win, 0 Podium, 0 Pole Position, 0 Fastest Lap, 0 Champ

 케빈 마그누센 (2014 ~ ) - 103 Races, 0 Win, 1 Podium, 0 Pole Position, 2 Fastest Laps, 0 Champ

 

 아버지인 얀 마그누센은 F1 역사상 첫 덴마크 국적 드라이버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1995 시즌 잠시 자리를 비운 하키넨을 대신해 맥라렌 소속으로 일본에서 열린 태평양 그랑프리 (한 나라에서 두개 이상의 그랑프리는 열지 못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유럽 그랑프리, 태평양 그랑프리처럼 둘 중 하나는 이름을 바꿔서 열렸습니다.)에 참가했습니다.

 이듬해 F1을 떠나 투어링카와 CART에 참가했던 얀은 1997년 스튜어트 팀 소속으로 F1에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인상적인 성적은 남기지 못했고 두시즌 동안 단 1포인트를 거둔채 F1 커리어를 마감했습니다. (1998년 캐나다 그랑프리 6위)

 F1을 떠난 후에는 어메리칸 오픈휠 레이싱 시리즈, 르망 24시, 데이토나 24시등에 참가했고 르망 24시에서 콜벳 팀 소속으로 2004 ~ 2006, 그리고 2009년에 우승을 차지했고 WeatherTech 스포츠카 챔피언십에서는 2017, 2018 시즌 챔피언에 오르는등 아직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들인 케빈 마그누센은 아버지에 이어 F1 역사상 두번째로 참가한 덴마크 드라이버입니다. 심지어 F1에 데뷔한 팀도 아버지와 똑같은 맥라렌이었습니다. 

 마그누센은 데뷔전이었던 2014년 호주 그랑프리에서 무려 2위를 차지하는 대형사고를 치며 화려하게 F1에 데뷔했습니다.  그러나 시즌 전체 성적은 맥라렌의 기대에는 약간 부족했고 그 후로 팀과 불화를 일으키며 두시즌 만에 팀을 떠나 르노로 이적했습니다.

 르노에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7 시즌부터 하스 소속으로 F1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기록은 F1 커리어에서 패스티스트 랩을 두번 기록했는데 두번 모두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 기록한 것이고 두번 모두 서킷의 랩 레코드였다는 점입니다.

 

 6. 나카지마 사토루 & 나카지마 카즈키

 

 

나카지마 사토루(오른쪽) & 카즈키(왼쪽)

 

 나카지마 사토루 (1987 ~ 1991) - 80 Races, 0 Win, 0 Podium, 0 Pole Position, 1 Fastest Lap, 0 Champ

 나카지마 카즈키 (2007 ~ 2009) - 36 Races, 0 Win, 0 Podium, 0 Pole Position, 0 Fastest Lap, 0 Champ

 

 일본 포뮬러에서 무려 5번이나 챔피언을 거머쥐었던 사토루는 포뮬러 3000에서 적응을 마치고 1987년 로터스 소속으로 F1에 데뷔했습니다. 당시 팀 동료는 전설 중의 전설로 남은 아일톤 세나였습니다. 사토루는 첫해 챔피언십 12위를 거두었지만 세나의 3위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었습니다.

 세나가 맥라렌을 이적한 후에 그의 팀 동료는 세나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던 넬슨 피케가 되었고 사토루는 여전히 팀 동료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1990년 티렐로 팀을 옮겼지만 티렐에는 장 알레시가 자리잡고 있었고 1991년을 끝으로 F1 커리어를 마감했습니다.

 

 아들인 카즈키는 토요타의 지원 속에 F3 유로 시리즈, GP2를 거친 후 2007시즌 최종전이었던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윌리엄스 소속으로 F1에 데뷔했습니다. (당시 윌리엄스 팀은 토요타의 엔진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게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듬해인 2008 시즌부터 풀 시즌을 소화했고 2008 시즌 성적은 9포인트로 나쁘진 않았지만 팀 동료였던 로스버그에 비해 많이 떨어졌고 2009 시즌 노포인트에 머무는 부진을 겪은후 계약을 맺지 못하고 F1 커리어를 마쳤습니다.

 F1을 떠난 이후로는 일본 포뮬러, 슈퍼 GT, WEC, 르망 24시 등에 참가했고 재작년과 작년 르망 24시에서 토요타 팀 소속으로 세바스티안 부에미, 페르난도 알론소와 함께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7. 쥘 뷜너브 & 자크 뷜너브

 

쥘(오른쪽) & 자크(왼쪽) 뷜너브

 

 쥘 뷜너브 (1977 ~ 1982) - 68 Races, 6 Wins, 13 Podiums, 2 Pole Positions, 8 Fastest Laps, 0 Champ

 자크 뷜너브 (1996 ~ 2006) - 165 Races, 11 Wins, 23 Podiums, 13 Pole Positions, 9 Fastest Laps, 1 Champ

 

 캐나다의 전설적인 F1 드라이버로 남은 쥘은 1977년 맥라렌 소속으로 F1에 데뷔하지만 영국 그랑프리 한 경기만 달린 후 시즌 도중 페라리로 이적했습니다. 쥘의 페라리 이적은 시즌 도중이었기 때문에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침체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페라리에서 저돌적이고 한계까지 레이스카를 몰아부치는 그의 드라이빙 스타일은 많은 리타이어를 안겨줬지만 그와 반대로 명경기를 펼치며 우승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페라리에서의 첫해인 1978시즌 최종전이었던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홈그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첫 캐나다 드라이버가 된 쥘은 이듬해 극적으로 성적을 끌어올리며 3승과 7번의 포디움으로 챔피언십 2위를 차지했습니다.

 1980년 잠시 부진을 겪은 쥘은 1981시즌 2승을 거두며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4번째 레이스였던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퀄리파잉 도중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자크 뷜너브는 북미 지역 출신답게 인디카로 드라이버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1995년 인디카 시리즈 챔피언을 차지하며 윌리엄스 팀의 눈에 띈 자크는 1996년 윌리엄스 팀 소속으로 F1에 데뷔했습니다. 

 그를 선택한 윌리엄스의 안목은 그대로 맞아 자크는 데뷔시즌에 챔피언십 2위에 오르는 대활약을 펼쳤습니다. 그의 활약은 이듬해에도 그칠줄을 몰랐고 7승과 함께 1997시즌 챔피언을 차지하며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챔피언의 꿈을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1998시즌 팀과 함께 부진을 겪으며 이듬해 신생팀이었던 BAR로 이적했고 2003 시즌까지 BAR 팀에서 두번 포디움에 오르는데 그치며 이전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2004 시즌 팀을 떠난 야노 트룰리를 대신해 르노로 팀을 옮겼지만 성적은 전혀 나아지지 못했고 자우버에서 2006 시즌까지 달리다가 시즌후 은퇴를 선언하며 F1 커리어를 마감했습니다.

   

 8. 조나단 팔머 & 졸리언 팔머

 

조나단(왼쪽) & 졸리언(오른쪽) 팔머

 

 조나단 팔머 (1983 ~ 1989) - 88 Races, 0 Win, 0 Podium, 0 Pole Position, 1 Fastest Lap, 0 Champ

 졸리언 팔머 (2016 ~ 2017) - 37 Races, 0 Win, 0 Podium, 0 Pole Position, 0 Fastest Lap, 0 Champ

 

 조나단 팔머는 F1 드라이버 가운데서도 가장 특이한 이력으로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는 F1 드라이버가 되기 전 의대에서 공부를 했으며 의사 자격증까지 있는 유일한 전직 F1 드라이버입니다.

 그는 1984년 Skoal Bandit (RAM Racing)이라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팀을 통해 F1에 데뷔했습니다.

 1985년 Zakspeed 팀으로 이적한 후 1986년까지 3년간 포인트를 따내지 못한 조나단은 1987년 티렐 팀으로 이적해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5위를 차지하면서 커리어 첫 포인트를 따냈습니다.

 이후 1989년까지 티렐 팀에서 계속 활동한 그는 매 시즌마다 한자리수 포인트를 따내다 1991년 브리티시 투어링카 챔피언십으로 옮기며 F1을 떠났습니다. 이 해 BBC의 F1 리포터도 시작했으며 해설자였던 제임스 헌트가 심장마비로 그랑프리 직전 갑작스럽게 사망한 1993년 캐나다 그랑프리에서는 머레이 워커와 짝을 이뤄 해설을 맡기도 했습니다.

 

 아들인 졸리언은 2014년 GP2 시리즈 챔피언을 차지하고 이듬해 로터스의 테스트 겸 리저브로 F1에 올라왔습니다. 

 그의 데뷔는 2016년에 이루어졌는데 팀의 이름은 르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10위로 1포인트를 따냈지만 이 해 그가 따낸 포인트는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듬해에도 이렇다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며 존재감은 없었고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알론소와 엉키면서 오히려 알론소의 팀 라디오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 6위를 차지하며 8포인트를 따냈지만 일본 그랑프리가 끝난후 사인츠에게 밀려 팀을 떠나며 F1 커리어가 그대로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F1이후의 커리어는 아버지와 비슷한데 2018년 BBC 라디오의 F1 중계에 합류하면서 방송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졸리언은 F1 공식 사이트의 칼럼니스트를 지내고 있고 매 그랑프리마다 올리는 칼럼이 팬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9. 넬슨 피케 & 넬슨 피케 주니어

 

넬슨 피케(왼쪽) & 넬슨 피케 주니어(오른쪽) 

 

 넬슨 피케 (1978 ~ 1991) - 207 Races, 23 Wins, 60 Podiums, 24 Pole Positions, 23 Fastest Laps, 3 Champs

 넬슨 피케 주니어 (2008 ~ 2009) - 28 Races, 0 Win, 1 Podium, 0 Pole Position, 0 Fastest Lap, 0 Champ

 

 브라질의 전설적인 F1 드라이버 중 한명으로 꼽히는 넬슨 피케는 1978년 Ensign 팀 소속으로 F1에 데뷔하지만 시즌 도중 브라밤 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1985시즌까지 브라밤 팀 (Parmalat Racing Team, Fila Sport, MRD Internation이라는 이름들로 활동했습니다) 에서 달린 피케는  1981, 1983 시즌 챔피언을 차지하며 정상급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1983시즌을 기점으로 팀의 전력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고 피케의 성적도 팀 전력과 맞물려 떨어졌습니다.

 1985시즌이 끝나고 윌리업스로 이적한 피케는 팀 동료였던 나이젤 만셀과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만 1987시즌 다시 챔피언에 오르며 3회 챔피언으로 브라질 드라이버 가운데 최다 챔피언이라는 업적을 쌓았습니다. (훗날 이 기록은 세나가 경신합니다.)

 1988시즌 로터스로 이적한 피케는 2년간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면서 윌리엄스 시절보다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1990시즌 베네통으로 이적한 그는 1990시즌 2승, 1991시즌 1승을 거두며 자신이 건재함을 알렸고 1991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아들인 피케 주니어는 아버지의 명성으로 인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본인도 2006년 GP2 시리즈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2008년 르노 팀 소속으로 F1에 데뷔한 피케 주니어는 독일 그랑프리에서 2위를 차지하며 커리어 첫 포디움을 달성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버지의 명성에 비하면 초라한 챔피언십 12위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이듬해에도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고 헝가리 그랑프리가 끝난 이후 팀으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으며 그대로 F1 커리어를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피케 주니어의 F1과의 관계는 끝나지 않았는데 이듬해 자서전을 내면서 2008년 싱가포르 그랑프리의 사고가 사전에 계획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F1에 충격을 안겨주었고 그의 폭로는 르노 팀의 수장이었던 브리아토레의 F1 영구 제명으로 이어졌습니다.

 피케 주니어 본인도 사실상 F1에서 영구 제명되면서 (F1 팀들이 피케 주니어를 영입할 생각을 아예 안했습니다.) F1 복귀로의 길은 없어졌고 이후 나스카와 브라질 스톡카 레이스를 거쳐 지난 시즌까지 포뮬러 E에서 활동했습니다. 포뮬러 E에서는 2015시즌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10. 만프레드 윈켈록 & 마르쿠스 윈켈록

 

 

만프레드(왼쪽) & 어린 시절의 마르쿠스(오른쪽) 윈켈록

  

 만프레드 윈켈록 (1980 & 1982 ~ 1985) - 56 Races, 0 Win, 0 Podium, 0 Pole Position, 0 Fastest Lap, 0 Champ

 마르쿠스 윈켈록 (2007) - 1 Race, 0 Win, 0 Podium, 0 Pole Position, 0 Fastest Lap, 0 Champ

 

 만프레드 윈켈록은 애로우즈, ATS, 브라밤, RAM 팀을 거치며 5시즌 동안 F1에서 달렸습니다. 동생인 요아힘 윈켈록도 F1 통산 7경기를 소화한 드라이버였습니다.

 만프레드의 데뷔는 1980년 이탈리아 그랑프리로 당시 부상을 입은 요헨 마스를 대신해 애로우즈 팀 소속으로 참가했습니다.

 1982시즌 ATS 팀 소속으로 풀시즌을 소화했고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5위를 기록하며 생애 첫 포인트도 기록했습니다.

 1984시즌까지 ATS 팀에서 달린 만프레드는 시즌 도중 브라밤 팀으로 이적해 한 경기를 소화했고 1985시즌을 앞두고 RAM 팀으로 이적했습니다.

 그러나 1985시즌 도중 온타리오에서 열린 버드와이저 1000km 내구 레이스에 참가했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마르쿠스는 2005년 포뮬러 르노 3.5 시리즈에서 3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듬해 미들랜드 팀의 테스트 겸 리저브 드라이버로 합류하며 F1과 인연을 맺었고 미들랜드 팀이 스파이커로 이름을 바꾼 2007시즌 야마모토 사콘의 데뷔 준비를 위해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유럽 그랑프리만 참가하고 F1 커리어를 마감했습니다.

 이후 마르쿠스는 GT 레이스쪽으로 발길을 돌려 2017년 블랑팡 GT 시리즈 2위, 인터네셔널 GT 챌린지 챔피언, 2018년 블랑팡 GT 시리즈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1. 케케 로스버그 & 니코 로스버그

 

 

케케(오른쪽) & 니코(왼쪽) 로스버그

 

 케케 로스버그 (1978 ~ 1986) - 128 Races, 5 Wins, 17 Podiums, 5 Pole Positions, 3 Fastest Laps, 1 Champ

 니코 로스버그 (2006 ~ 2016) - 206 Races, 23 Wins, 57 Podiums, 30 Pole Positions, 20 Fastest Laps, 1 Champ

 

 로스버그 부자는 힐 부자와 더불어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F1 챔피언을 차지했던 케이스입니다. 부자가 나란히 한번씩 챔피언에 오른점도 흥미롭습니다.

 케케 로스버그의 데뷔는 29살로 많이 늦은 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F1 커리어는 9년으로 약간은 짧았습니다.

 테오도어 팀 소속으로 1978년 F1에 데뷔한 케케는 테오도어, ATS, 울프 팀을 거쳤지만 첫 두시즌 동안 단 1포인트로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피티팔디 팀으로 옮긴 1980시즌에는 개막전인 아르헨티나 그랑프리에서 3위를 기록하며 첫 포디움을 기록했고 6포인트로 챔피언십 10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1981시즌에는 전년보다 오히려 챔피언십 성적이 떨어졌지만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 보고 있던 윌리엄스가 계약을 제안하며 1982 시즌을 앞두고 윌리엄스로 이적했습니다.

 윌리엄스에서의 첫 해 케케는 대폭발을 하게 되는데 커리어 첫 우승과 더불어 2위 3번과 3위 2번을 거두며 생애 첫 F1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이로써 그는 이색적인 F1 기록을 하나 세우게 되었는데, 역사상 F1 챔피언들 중 시즌 최소 승수로 챔피언을 차지한 드라이버가 되었습니다. 이 해에는 유난히 우승을 차지한 드라이버가 많이 나왔는데 16번의 레이스중 한번 이상 우승을 차지한 드라이버가 무려 11명에 달했습니다.

 이듬해에도 1승을 거두며 챔피언십 5위로 선전했지만, 1984시즌에는 1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0번이나 리타이어를 기록하며 챔피언십 8위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1985시즌에는 커리어 시즌 최다승인 2승을 거두며 건재함을 알렸고 1986시즌 맥라렌으로 이적해 한시즌을 달린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아들인 니코 로스버그는 F1에 데뷔하기 전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5년 GP2 챔피언에 오른 그는 2006년 윌리엄스 소속으로 F1에 데뷔했습니다.

 윌리엄스에서의 첫 4시즌 동안 인상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팀 동료보다는 항상 나은 성적을 기록하며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2010시즌 야심차게 F1에 복귀한 메르세데스 팀에서 슈마허의 팀 동료로 그를 점찍으며 니코는 2010시즌을 앞두고 메르세데스로 팀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메르세데스의 레이스카는 레이스 페이스에서 약점을 노출하며 2012시즌까지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 로터스와 중위권 경쟁을 펼쳤습니다.

 2013시즌 해밀턴의 이적과 레이스카 성능이 좋아지면서 팀은 컨스트럭터 2위로 뛰어올랐고 터보 엔진이 도입된 2014시즌부터 메르세데스가 최강팀으로 군림하면서 니코도 드라이버 챔피언 경쟁에 뛰어들 정도로 성적이 급상승했습니다. 그러나 팀동료였던 해밀턴의 화려한 성적에 묻히며 두시즌 내내 챔피언십 2위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니코는 벼르고 벼른 끝에 2016시즌 해밀턴과 시즌내내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9승으로 마침내 해밀턴을 재치고 생애 첫 F1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지 몇일 지나지 않아 은퇴를 선언하면서 F1을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은퇴 이후에는 F1 중계에 패널로 종종 참가하고 있고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팬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12. 요스 베르스타펜 & 막스 베르스타펜

 

 

요스(오른쪽) & 막스(왼쪽) 베르스타펜

 

 요스 베르스타펜 (1994 ~ 1998 & 2000 ~ 2001 & 2003) - 107 Races, 0 Win, 2 Podiums, 0 Pole Position, 0 Fastest Lap, 0 Champ

 막스 베르스타펜 (2015 ~ ) - 102 Races, 8 Wins, 31 Podiums, 2 Pole Positions, 7 Fastest Laps, 0 Champ

 

 요스 베르스타펜은 1993년 애로우즈 팀의 테스트를 받으며 F1과 인연을 맺었고 테스트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F1 팀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페라리와 윌리엄스를 제외한 모든 팀과 접촉한 그는 마침내 베네통 팀과 테스트 드라이버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1994시즌 프리 테스트에서 팀의 드라이버였던 JJ레토가 심한 부상을 입으면서 개막전부터 참가한 요스는 3번째 레이스였던 산마리노 그랑프리부터 레토에게 자리를 내줬습니다. 그러나 레토의 실력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프랑스 그랑프리부터 다시 복귀했고 레토가 다시 돌아온 일본 그랑프리까지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헝가리와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두번 3위를 거두며 챔피언십 10위에 올랐지만 당시 팀의 루키였던 슈마허에 밀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995시즌부터 요스는 여러 팀을 옮겨다녔는데 심텍 (1995), 풋워크 (1996), 티렐 (1997), 스튜어트 (1998)로 여기저기 옮겨다녔지만 그동안 거둔 성적은 1996년 아르헨티나 그랑프리에서 거둔 6위가 전부였습니다.

 2000시즌을 앞두고 애로우즈 팀으로 이적한 요스는 2년을 애로우즈 팀에서 달렸고 한시즌을 쉰 후 2003시즌 미나르디 팀을 마지막으로 F1 커리어를 마감했습니다.

 F1에서 그의 별명은 'Jos the Boss', 'Dutch Devil'로 불렸는데 그런 별명탓인지는 몰라도 전 부인을 청부살인 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등 사생활에서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아들인 막스 베르스타펜은 (위에서 청부살인 위협을 받았다는 요스의 전 부인이 막스의 친어머니입니다.  ) 어릴적부터 레이스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2014년 이미 토로로쏘와 테스트 드라이버 계약을 맺을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2015시즌 17살이라는 나이에 F1에 데뷔한 막스는 두번째 레이스였던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포인트를 따내며 F1 역사상 최연소 포인트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6시즌 시즌 도중 레드불로 이적한 그는 레드불에서의 첫 레이스였던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베텔이 가지고 있던 최연소 그랑프리 우승 기록까지 갈아치웠습니다. 시즌내내 기복은 있었지만 총 7번 포디움에 오르면서 챔피언십 5위를 차지하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습니다.

 이듬해인 2017시즌 처음으로 레드불에서 풀시즌을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성적은 지난해보다 떨어졌지만 재작년과 작년 계속 시즌 성적을 끌어올렸고 작년에는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커리어 첫 폴포지션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마치며 

 

 이것으로 F1에서 달렸던 부자 드라이버들에 대해 모두 다뤄보았습니다. 저는 다음주에 다른 F1 소재를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F1
18
Comments
1
2020-01-14 23:13:16

선추천후감상

WR
2020-01-14 23:22:38

 감사합니다. 

1
Updated at 2020-01-16 00:28:57

몇몇 몰랐던 선수들과 부자관계도 보입니다만 대부분 다 유명한 선수들이네요

F1은 유난히 부자가 대를 이어 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끼는데

확실히 이게 다른 스포츠 종목들보다 금전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스포츠 중에 하나라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마리오 안드레티는 미국 출신이라고 하기보다는 미국 국적이라고 하는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요?

본래 이탈리아 사람인데 귀화한 사람이라 미국 출신이라고 하니 순간 어색했네요;;

하긴 F1에 나올 때는 이미 미국인이였으니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겠습니다.  

 

피티팔디는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네요

크리스티안은 에머슨옹의 아들이 아니라 에머슨옹의 형인 윌슨 피티팔디의 아들로 알고있습니다.

즉, 둘은 부자지간이 아니라 삼촌과 조카 사이인걸로 알고 있어요

보니까 참고하신 링크 자료에도 부자관계라고 적혀있는데

위키에도 그렇고 다른 모터스포츠 사이트에도 크리스티안은 윌슨 피티팔디의 아들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최초의 부자 월챔인 힐 가문! 

데이먼 힐은 정말 대기만성형 드라이버라고 하더군요

제 아무리 당시 윌리엄스 머신 성능이 좋았어도 그렇지 저 나이에 저런 순위와 

결국 챔프까지 먹었다는 게 정말 대단 하더라 고요;;

본문에 적어주신 것처럼 본래 아버지 그레이엄 힐 덕분에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내다

아버지가 사고사 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며 꽤나 힘든 성장기를 보냈다고 하더군요.. 

 

요즘 질 빌르너브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갑니다.

보니까 과거 매니아에도 베일님이 페라리 드라이버들의 잔혹사 다루면서 언급해주셨더군요

엔초 페라리가 상당히 총애했던 선수였다죠? 

(엔초가 총애하던 라우다가 페라리를 나간 뒤에 들어와서 그런지)

세간에 알려진 질 빌르너브의 평가와 

1979년 프랑스 그랑프리 맞나요? 거기서 르네 아르누와의 휠투휠 장면 보고 

전 딱 떠오른 선수가 요즘 막스 보는듯한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드라이빙 스타일이나 이런건 볼 줄 모릅니다만 그냥 묘하게 과감하고 저돌적인게 막스 보는것 같았어요

빌르너브와 당시 팀메이트였던 디디에 피로니의 스토리를 보고 적지않게 충격먹었었어요...

그런 슬픈 결말이....

 

니코 로즈버그는 특이하게도 아버지는 최초의 플라잉핀인데

F1에서는 독일 국적으로 참여했더군요? 최근에야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당연히 핀란드 국적으로 나왔을거라고 생각했어요 

 

대부분 아버지 만한 아들이 없어 보이는데

마그누센은 F1 커리어로 보면 아버지 보단 나았다고 봐야할테고..

가장 압도적인건 역시 막스네요....

 

언제가 믹 & 데이비드, 슈마허 사촌형제들과

피티팔디 형제들, 쥴리아노 알레시와 같은 네임드 선수들의 2, 3세들이 

F1 시트에 올라올지 지켜보는것도 하나의 즐거움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믹은 페라리가 아니더라도 알파 로메오를 1번은 거쳐갈 것 같습니다....

슈마허라는 성이 가지는 의미가 F1에서 워낙 어마어마 하니..페라리가 한번은 무조건 데뷔시킬 것 같아요

물론 믹은 르끌레나 러셀 같은 포스를 보여주지 못해서 내년이 정말 중요하겠습니다만.. 

WR
1
2020-01-15 08:51:18

 안드레티는 말씀하신대로 이탈리아 출신이라고 해야될것 같네요. (찾아보니 지금은 크로아티아 땅이 됬네요.)

 아 크리스티안이 에머슨옹 조카였군요. 원글에 제대로 낚여버렸네요. 

 

 데이먼 힐이 윌리엄스 시절 정말 잘해준게 성적도 성적이지만 팀을 옮겨서 적응도 안되있는 상황에서 액티브 서스펜션 때이고 밸런스가 완전 깨져버린 레이스카와 세나가 세상을 떠나고 최악이 된 팀 분위기 속에서 저런 성적을 내줬다는거죠. 좀더 일찍 데뷔했다면 누적에서 더 좋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합니다.

 

 지난 글에서도 얘기한적이 있지만 뷜너브는 스노우 모빌로 레이스를 시작한 특이한 케이스인데 빙판길이 익숙하다보니 레이스카가 미끄러질만한 상황에서도 밸런스를 찾아내는 능력이 발군이었다고 하네요.

 

 로스버그가 독일 국적으로 참가했던건 어머니가 독일 국적이라 그랬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F1에서 이중 국적이 되면 보통 어머니의 국적을 따라가더라고요. (그로장이 스위스-프랑스 이중 국적이고 알본은 영국-태국 이중 국적이죠.)

 

 요스도 실력은 나름 괜찮았지만 눈에 확 띌 정도는 아니었던것 같네요. 재급유하다가 레이스카에 불이 붙었던거랑 전처와의 갈등이 오히려 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걸 보면요.

 

 엔초 피티팔디는 지금으로만 보면 잠재력은 있는것 같습니다. 마카오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하위권이긴 했지만 순위를 꽤나 많이 끌어올렸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알레시도 지켜봐야 할것 같은데 작년에 후베의 사고와 얽혀서 그런지 볼때마다 복잡한 마음이네요. 

 믹은 22시즌이나 23시즌에 F1에 모습을 보일것 같고 데뷔한다면 거의 99% 알파로메오가 될것 같습니다. 페라리가 21시즌 많은게 바뀌기 때문에 영 드라이버들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르끌레르라는 좋은 선례가 있기 때문에 더욱 알파로메오 쪽을 선호할것 같습니다.

 

1
2020-01-15 21:42:54

아 질 빌르너브...그런 사연이...

어쩐지 비오는 와중에 다들 레인타이어 끼우기 바쁜데 

괜히 슬릭 타이어 달고 달린게 아니였군요;;

탑기어 진행자 중 한 분도 그렇고 

(누구였는지는 기억이;;이분은 세나보다도 질을 위에 두시더라고요)

링크걸어주신 원글 포함해서 올드팬들은 질과 아들 자크와의 비교에서

질을 더 높게 평가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아들이 월챔인데도 말이죠

정말 대단했던 선수였던 것 같아요 

 

이중국적인 선수들은 대체로 어머니 국적을 많이 따라간다고 하더라고요

알본의 경우는 태국 국적 택하는게 여러모로 스폰서 효과도 있고 좋았으리라 봅니다.

이런 이유도 잭 에잇켄도 F1승격에 기대를 걸고 있는건데...시트가 나올지 모르겠군요...

 

믹은 은퇴를 코앞에 둔 키미의 가장 유력한 대체자원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지오비나찌도 좀 불안불안 하지만 후반기 키미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준 바 있고

키미는 사실 더 달려달라고 하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고령에 접어들었죠.. 

어쩌면 키미가 다가올 20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알파 로메오의 테스트 드라이버가 된 쿠비차가 잠시 올라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키미 팬으로선 키미가 조금이나마 더 오래 달려주었우면 하지만요..

희한하게 키미는 나이가 들수록 F1에 애정이 더 생기는 듯한 인상도 있는데

요즘 보니 랠리 준비도 한창인 것 같더군요, 은퇴가 멀지 않은 느낌이 옵니다.

 

그러고 보니 앙투안 후베가 사용하던 19번이 F2에서 영구결번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WR
1
2020-01-16 12:48:41

 뷜너브의 드라이빙을 보면 처절하게 달린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런면에서는 만셀과 비슷해보이기도 합니다. 만셀은 거기에 더해 굉장히 저돌적이었죠.

 사고로 커리어를 일찍 마감해서 누적 기록에서 밀리지만 쥘과 자크 모두를 본 사람들은 쥘을 항상 위로 놓더라고요.

 에잇켄은 만약 리카르도가 르노에 실망해서 팀을 떠나거나, 메르세데스에서 오콘을 불러들인다면 자체적으로 올릴수 있는 드라이버 가운데 가장 먼저가 되지 않을까합니다. 물론 팀에 주관유같은 유망주들도 있지만 에잇켄보다 임팩트에서 밀리는것 같습니다. 에잇켄 본인도 여러 매체에 얼굴을 보이며 눈도장을 찍고 있는데 이럴때 우리나라 기업에서 스폰서 붙어주면 참 좋을것 같습니다.

 믹이 알파로메오로 올라온다는 걸 가정한다면 팀에서는 1~2년간의 공백을 라이코넨, 쿠비짜 둘 중 한명에게 맡기는건 확실할것 같습니다. 당장 낼수 있는 성적으로 보자면 라이코넨이 더 가치가 높지만 계속 F1 커리어를 이어갈 의지가 있냐가 중요하겠네요.

 비앙키때도 그렇고 후베도 꽤나 빨리 영구결번이 되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아까운 드라이버였습니다. 

1
Updated at 2020-01-16 00:26:57

팔머는.....

 

 

왓 이즈 팔머 이즈 두잉!?

히 컷더 '치킨'

퐈이브 세컨 잇츠 어 '요크'! 

왓 어 요크!! 퐈이브 세컨...왓 어 요크!

웨얼 이즈 팔머? 

카르마 

WR
1
2020-01-15 08:35:43

 그때 알론소가 많이 화나있긴했죠. 

1
2020-01-15 09:39:21
레이싱 수저? 금 스팅어링 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WR
2020-01-15 09:43:21

 감사합니다.

 반짝반짝 금으로 만든 휠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요새는 스트롤이라던가 라티피라던가 다이아몬드 수저가 유행하는거 같더라고요. (부럽...)

1
2020-01-15 11:38:20

ㅈ그...아니 마그누센 싱가폴 패랩기록 인정됐나요??? 룰북을 잘몰라서 그러는데 아마 두번다 10위권 밖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 포인트는 안주더라도 기록은 남는 건가용? 

WR
Updated at 2020-01-15 12:32:30

 아앗...그 별명을 아시다니...

 마그누센이 입이나 행동으로 사고를 많이 치긴했죠. 훌켄버그한테 날린 Suck my xxxx드립이 최강이 아닐까 싶네요.

 포인트는 못얻지만 패스티스트 랩 자체는 인정됩니다. 지금 마리나 베이 서킷의 랩 레코드 보유자가 마그누센이죠.

1
2020-01-15 11:39:13

재급유 화재 사고가 아버지 베르스타펜 맞나용?

WR
2020-01-15 12:26:59

 맞습니다. 본인과 피트크루들까지 불이 붙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아무도 안다쳤죠.

 

1
2020-01-15 12:15:03

몰랐던 정보들이 많네요.
토시하나 안 빼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베르스타펜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청부살인하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니..
좀 충격적이네요.

WR
2020-01-15 12:31:17

 재판까지 갔지만 살인청부를 했다는 혐의는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자 매세지등으로 협박을 했던 사실은 인정되어 벌금과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습니다. 

1
2020-01-17 18:09:44

잘 읽었습니다. 역시 다이아 수저의 스포츠 답다는 생각이...

WR
Updated at 2020-01-19 10:22:22

 F1 드라이버가 된다는거 자체가 매우 힘들죠. 실력에 돈까지 있어야 되고 운까지 따라줘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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