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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F1 역사] 뿌리를 찾아서 - 알파로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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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5-09 14: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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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올드팬들에게 자우버로 많이 알려져있는 알파로메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Alfa Romeo Racing Orlen

 

 이전 팀들

 

 * 알파로메오 (1950 ~ 1951)

 * 오토델타 (Autodelta, 1979)

 * 말보로 (Marlboro Team Alfa Romeo, 1980 ~ 1983)

 * 베네통 (Benetton Team Alfa Romeo, 1984 ~ 1985) 

 자우버 (Sauber, 1993 ~ 2005)

 BMW-자우버 (2006 ~ 2010)

 자우버 (2011 ~ 2018)

 알파로메오 (2019 ~ )

 

 * 1951년까지 활동했던 알파로메오, 79년부터 85년까지 활동한 알파로메오, 현재의 알파로메오는 모두 다른 팀입니다.

 

 대표적인 드라이버

 

 * 알파로메오 - 후안 마누엘 판지오, 쥐세페 "니노" 파리냐, 루이지 파지올리 (3명의 성 앞글자를 따서 '3F'로 지칭하기도 합니다.)

 * 오토델타, 말보로, 베네통 - 브루노 지아코멜리 (Bruno Giacomelli), 패트릭 디파이에 (Patrick Depailler), 안드레아 드 체자리스, 마리오 안드레티, 에디 치버

 자우버 - 칼 웬들링어 (Karl Wendlinger), JJ 레토 (JJ Letho), 장 알레시, 페드로 디니즈 (Pedro Diniz), 미카 살로 (Mika Salo) , 키미 라이코넨, 하인츠-하랄드 프렌첸, 펠리페 마싸, 세르지오 페레즈, 코바야시 카무이, 에스테반 구티에레즈, 마커스 에릭슨

 BMW-자우버 - 닉 하이드펠트, 로버트 쿠비짜

 

 역사

 

 알파로메오

 

 알파로메오는 F1 이전부터 모터 스포츠의 강자로 군림했던 팀이었습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무려 페라리를 휘하에 거느리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 때 페라리를 흡수하는 과정에 반발한 엔초 페라리가 알파로메오와의 관계를 끊고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세웠다는 얘기는 유명합니다. 

 1930년대 중반까지 메르세데스, 아우토 유니온(Auto Union, 현재의 아우디)과 더불어 강팀으로 꼽혔지만 30년대 중반부터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39년까지는 두 팀, 특히 메르세데스에 밀리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1938년 만들어낸 158 모델은 아직까지도 기억되는 명차로 전쟁이 끝난후 1949년까지 알파로메오는 이 차로 그랑프리를 지배했습니다.

 

 1950 - F1 챔피언십 첫해 알파로메오는 158모델에 터보차저를 장착해 F1에 참가했는데 경쟁자였던 메르세데스, 아우토 유니온은 아예 참여조차 할수 없는 상황이었고 마세라티는 알파로메오와 경쟁하기에는 전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BRM까지 레이스카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시즌 말미에 겨우 참가하는 상황속에서 알파로메오의 독주는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알파로메오는 챔피언십 경기로 치뤄진 7경기에서 무려 6승을 쓸어담았고 (우승을 놓친 레이스는 인디 500이었는데 미국까지 이동거리가 길다는 이유로 불참했습니다.) 파리냐가 챔피언, 판지오가 2위, 파지올리가 3위를 차지했습니다.

 

 1951 - 158 모델을 업그레이드한 159 모델로 시즌을 치뤘지만 페라리의 전력이 올라오면서 이전 해와 같은 강력함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시즌 내내 판지오를 페라리의 아스카리가 추격했지만 판지오가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알파로메오는 2년 연속으로 드라이버 챔피언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국영 기업이었던 알파로메오는 국가의 지원에 상당 부분을 의존했고 많은 개발 비용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정부에서 자금 지원을 거부하면서 알파로메오는 F1 참가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Alfa Romeo 158 Alfetta (1950)

 

 다시 돌아온 알파로메오

 

 1960년대 페라리는 주축을 이루고 있었던 엔지니어들이 엔초 페라리와의 불화 속에 대거 빠져나갔습니다. (The Great Escape) 그 중에는 명차였던 156을 만들어냈던 카를로스 치티 (Carlos Chiti) 도 있었는데 그는 ATS 팀이 실패를 거둔 후 알파로메오에게 다시 F1에 참가할 것을 제안했고 마침 F1 복귀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알파로메오는 1977년 팀의 레이스 부서였던 오토델타 (Autodelta) 의 운영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1979 - 오토델타는 177이라는 레이스카를 만들고 벨기에 그랑프리에 처음으로 참가했습니다. 팀의 드라이버는 브루노 지아코멜리, 비토리오 브람빌라 (Vittorio Brambilla) 였습니다. 그리고 오토델타는 브라밤과 손을 잡고 브라밤의 레이스카에 들어가는 엔진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오랫만에 돌아온 알파로메오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지만 시즌 15경기중 5경기에 참가하는데 그쳤고 단 2번의 완주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더불어 브라밤과의 관계도 시즌이 끝나기전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1980 - 말보로가 스폰서로 들어오면서 팀 이름이 말보로 팀 알파로메오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브람빌라 대신 패트릭 디파이에가 새 드라이버로 들어왔습니다. 

 지난해 막판 새로 제작한 레이스카였던 179로 시즌을 시작한 알파로메오는 지난해보다는 확실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개막전이었던 아르헨티나 그랑프리에서 지아코멜리가 5위를 차지하며 팀에게 첫 포인트를 선사해주었고 독일 그랑프리에서 다시 5위를 차지하면서 지아코멜리는 나쁘지 않은 시즌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디파이에는 지아코멜리와 달리 비극으로 시즌을 마치고 말았는데 독일 그랑프리의 테스트 주행 도중 큰 사고를 당하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은 시즌 동안 디파이에의 자리는 브람빌라와 안드레아 드 체자리스가 매꾸었습니다.

 알파로메오는 이 시즌 4포인트로 컨스트럭터 11위를 차지했습니다.

 

 1981 - 알파로메오는 179 레이스카를 업그레이드한 179B를 선보였습니다. 시즌을 치루면서 179B는 179C, 179D로 계속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디파이에가 세상을 떠나면서 빈 한자리에는 마리오 안드레티가 새 드라이버로 들어왔습니다. 안드레티는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4위를 차지하며 팀의 기대에 부응했고 지아코멜리는 시즌 막판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4위, 시저스 펠리스 그랑프리 (라스베가스 시저스 펠리스 호텔 근처의 임시 서킷에서 열렸던 그랑프리) 에서 3위에 오르며 팀에게 첫 포디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알파로메오는 10포인트를 거두며 컨스트럭터 9위로 올라섰습니다.

 

 1982 - 안드레티가 은퇴를 선언하자 알파로메오는 1980시즌 두 경기를 같이 달렸던 체자리스를 새 드라이버로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부터 레이스카 디자인을 유로레이싱에 아웃소싱 형태로 맡기고 알파로메오는 나머지를 지원하는 역할로 한발 물러서게 되었습니다.

 시즌 초반 남아공 그랑프리를 제외하고는 지아코멜리와 체자리스 모두 리타이어만을 기록했지만 모나코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지아코멜리가 3그리드, 체자리스가 7그리드를 차지하며 절호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거기에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던 아누, 프로스트가 리타이어 하면서 체자리스는 우승을 차지할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갔지만 마지막 랩을 앞두고 연료가 떨어지면서 마찬가지로 연료가 떨어졌던 피로니에 이어 3위로 포디움에 오르는데 만족했습니다. (우승은 리카르도 파트레제가 차지했고 해설자였던 헌트는 "우리는 피니쉬 라인에서 우승자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도 안왔군요" 라며 상황을 꼬집기도 했습니다. 결승선을 통과한 드라이버는 5명 밖에 없었고 파트레제를 빼고는 모두 백마커였습니다.)

 이후 체자리스가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6위를 거두었고 지아코멜리도 독일 그랑프리에서 5위를 차지하며 알파로메오는 7포인트로 컨스트럭터 10위를 차지했습니다.


 1983 - 지아코멜리가 톨먼으로 떠나고 마우로 발디(Mauro Baldi)가 새 드라이버로 들어왔습니다.

 이 시즌 알파로메오는 그동안 쓰던 V12 자연흡기 엔진대신 V8 터보차저 엔진을 장착했는데 이것이 주요하며 팀의 전력은 지난해보다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개막전에 체자리스가 참가하지 못하는등 초반에는 어수선했고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발디가 6위를 거두며 1포인트만을 따낸채로 전반기가 흘러갔습니다.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체자리스가 레이스 중반 2위를 달리기도 했지만 엔진 문제로 리타이어 했습니다.)

 후반기부터 알파로메오는 힘을 내기 시작했는데 독일 그랑프리에서 체자리스가 3그리드에서 출발해 2위를 차지하며 시즌 처음으로 포디움에 올랐고 발디가 네덜란드 그랑프리에서 5위, 체자리스가 유러피언 그랑프리 (브랜즈 햇치)에서 4위를 차지한데 이어 최종전이었던 남아공 그랑프리에서 체자리스가 2위를 차지하며 시즌 막판 힘을 냈습니다.

 그 결과 시즌 합계 13포인트로 컨스트럭터 6위를 차지했습니다.

 

 1984 - 그동안 타이틀 스폰서였던 말보로가 떠나고 체자리스와 발디도 팀을 떠났습니다. 대신 새 타이틀 스폰서로 베네통이 들어왔고 리카르도 파트레제, 에디 치버가 들어왔습니다.

 한편 FISA에서 이 시즌 220리터의 연료 제한을 걸며 레이스 도중 재급유까지 금지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연비가 안좋았던 알파로메오 엔진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개막전인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치버가 4위, 이어진 남아공 그랑프리에서 파트레제가 4위에 오르며 시작은 좋았지만 치버는 시즌 내내 포인트를 따내는데 실패했고 파트레제도 시즌 막판이 되서야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3위, 유러피언 그랑프리 (뉘르부르크링)에서 6위를 차지하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결국 11포인트로 알파로메오는 컨스트럭터 8위로 떨어졌습니다.

 

 1985 - 파트레제와 치버는 계속 자리를 지켰지만 팀의 전력은 지난해보다 더 안좋아지면서 시즌 16경기 중 파트레제, 치버가 모두 리타이어를 기록한 레이스가 11경기에 이를 정도로 레이스카의 신뢰성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파트레제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 시즌 레이스카를 두고 "내가 몰았던 차중 가장 최악이었다."라고 혹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두 명 모두 포인트를 따내는데 실패하며 0포인트로 컨스트럭터 순위에 이름도 올리지 못하는 신세로 추락했습니다. 그리고 알파로메오는 이 해를 마지막으로 F1에서 철수를 선언했습니다.

 

 

Alfa Romeo 183T (1983)

 

 자우버

 

 자우버는 1970년 스위스의 사업가인 피터 자우버가 설립한 회사입니다. 처음에는 스포츠카 레이싱을 주력으로 활동했고 1980년대는 메르세데스의 공식 팩토리 팀이 되면서 입지를 굳혀나갔습니다. 르망 24시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으며 하인츠-하랄드 프렌첸, 미하엘 슈마허, 요헨 마스, 장-루이스 쉴레서(Jean-Louis Schlesser, F1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난 Jo Schlesser의 조카입니다.) 등이 자우버의 스포츠카로 레이스에 참가했습니다.

 한편 이 시기 F1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1989년 터보 엔진이 금지되고 자연 흡기 엔진으로 돌아간 것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스바루(!), 람보르기니, 포르쉐등 많은 회사들이 F1에 엔진 공급 업체로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메르세데스는 비밀리에 자우버를 지원하며 F1에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1993 - 자우버는 자신들이 제작한 섀시에 일모어 사(현 메르세데스 HPP)에서 제작한 V10 엔진을 장착한 레이스카를 선보이며 팀 자우버 F1이라는 이름으로 F1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첫 시즌 드라이버는 스포츠카 레이스 시절 함께했던 칼 웬들링거와 JJ 레토였습니다.

 데뷔전부터 자우버는 만만치 않은 전력을 과시했는데 레토가 5위를 차지하며 데뷔전에서 팀의 첫 포인트를 안겨주었습니다.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는 레토가 엔진 문제로 마지막 랩을 달리지 못했음에도 4위를 차지했고 (프로스트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2위인 슈마허를 제외하면 모두 1랩 이상 뒤쳐져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레토는 포인트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웬들링거가 캐나다, 헝가리,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포인트를 획득하며 (6 - 6 - 4 - 5) 자우버는 데뷔시즌 12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차지하며 신생팀으로써는 좋은 결과를 거두었습니다.

 

 1994 - 팀 이름이 자우버-메르세데스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레토 대신 하인츠-하랄드 프렌첸을 영입하며 드라이버 라인업 구성을 마쳤습니다.

 첫 3경기에서 프렌첸과 웬들링거가 포인트를 따내며 (프렌첸 - 퍼시픽 그랑프리(오카야마), 웬들링거 - 브라질, 산마리노 그랑프리) 기세좋게 출발했지만 4번째 레이스였던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웬들링거가 연습 주행 도중 큰 사고를 당하면서 팀에서 빠지는 악재가 닥쳤습니다. (몇주 동안 혼수 상태에 빠졌을 정도로 큰 부상이었습니다.) 팀에서는 체자리스와 레토로 웬들링거의 자리를 매꾸었지만 남은 시즌 두 명이 거둔 포인트는 체자리스가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거둔 1포인트가 유일했습니다.

 결국 프렌첸이 힘을 냈지만 시즌 합계 12포인트로 컨스트럭터 순위는 8위로 밀려났습니다.

 

 1995 - 이 해 자우버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먼저 타이틀 스폰서로 레드불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레드불과 자우버는 10년 기간의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메르세데스 대신 포드와 손을 잡으면서 포드의 V8 엔진을 들여왔습니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빠졌던 웬들링거가 돌아왔지만 이전 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시즌 중반 장-크리스토프 보울리옹 (Jean-Christophe Boullion)이 웬들링거 대신 시즌을 치루며 프렌첸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홀로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레이스카 성능이 지난해보다 좋아지면서 프렌첸의 성적도 덩달아 뛰어올랐고 시즌 8경기에서 포인트를 따낸데다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3위로 팀의 첫 포디움까지 안겨주며 드라이버 챔피언십 9위를 차지했습니다.

 자우버는 이런 프렌첸의 활약 속에 18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차지했습니다.

  

 1996 - 자우버는 웬들링거, 보울리옹과 계약을 포기하고 자니 허버트를 프렌첸의 새 팀메이트로 데려왔습니다. 

 포드의 신형 V10 엔진을 받았지만 레이스카의 성능은 지난해보다 나아지지 않았고 허버트가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3위, 프렌첸이 모나코와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4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면 인상적인 모습은 없었습니다. 결국 11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해 자우버는 말레이시아의 에너지 회사인 페트로나스와 6:4의 비율로 자금을 투자해 자우버 페트로나스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다음 자체 엔진을 제작하려고 했지만 아시아를 강타한 경제 위기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1997 - 팀 이름에 페트로나스가 추가되면서 레드불-자우버-페트로나스라는 긴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체 엔진을 제작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자우버는 페라리의 엔진을 구입했습니다. (이 때부터 페라리의 영향력이 세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우버 페트로나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기어박스를 자체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해 선보인 레이스카인 C16은 엔진뿐만 아니라 섀시까지 페라리와 매우 흡사했고 페라리의 스탭 일부가 자우버로 건너가기도 하면서 규정 위반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낳았지만 (FIA 규정상 모든 팀의 레이스카는 각자의 디자인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FIA에서는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년간 팀을 이끌었던 프렌첸이 윌리엄스로 빠져나간 자리는 니콜라 라리니 (Nicola Larini) 로 대신했지만 시즌을 치루면서 이 자리에는 지아니 모비델리 (Gianni Morbidelli), 노베르토 폰타나 (Noberto Fontana) 가 번갈아 앉게 됩니다.

 허버트가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3위를 차지하는등 선전했지만 라리니, 모비델리, 폰타나 3명이 모두 합쳐 1포인트만 기록한 자우버는 합계 16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기록했습니다.

 

 1998 - 베테랑 드라이버였던 장 알레시를 영입하면서 의욕적으로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알레시가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어느 정도 기대를 만족시켰지만 허버트가 지난해와 달리 극도의 부진을 겪으며 자우버는 시즌 합계 10포인트로 컨스트럭터 6위를 기록했습니다.

 

 1999 - 자우버는 지난해 부진했던 허버트와 결별하고 브라질 출신의 페드로 디니즈를 영입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허버트는 이 해 스튜어트로 이적해 커리어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시즌에는 알레시가 프랑스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시즌 합계 5포인트로 컨스트럭터 8위를 기록했습니다.

 

 2000 - 알레시가 프로스트와 계약을 맺으며 떠난 자리에 미카 살로가 들어왔습니다. 

 이 해 브라질 그랑프리에서는 연습 주행에서 좋은 기록을 냈지만 정작 퀄리파잉에서는 레이스카가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레이스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살로가 브라질 그랑프리 이후로 6포인트를 기록했지만 디니즈가 0포인트에 그치는 부진을 겪은 자우버는 6포인트로 컨스트럭터 8위를 유지했습니다.

 

 2001 - 지난 몇년간 부진했던 자우버는 이 해 드라이버 라인업을 꾸리는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프로스트에서 닉 하이드펠트가 넘어왔고 나머지 한 자리에는 재능은 많았지만 아직 자동차 레이스 경험이 부족했던 핀란드 출신 루키 드라이버를 기용했는데 이 드라이버가 키미 라이코넨이었습니다.

 개막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 하이드펠트가 4위를 차지하고 많은 사람들의 의구심을 자아냈던 라이코넨이 6위를 차지하며 자우버의 선택은 옳았던 것이 되었습니다.

 하이드펠트가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3위를 차지하는등 지난해까지 자우버에 달렸던 드라이버들과는 다른 페이스를 보여주었고 라이코넨도 시즌 내내 하이드펠트와 페이스를 맞추며 자우버는 시즌 합계 21포인트로 컨스트럭터 4위를 차지하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2002 - 라이코넨이 맥라렌으로 이적하자 (하키넨이 은퇴를 하면서 자리가 생겼는데 하키넨은 론 데니스에게 "우승을 원한다면 핀란드 드라이버 (라이코넨) 를 데려와라." 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 때 라이코넨은 자우버에 엔진을 공급하는 페라리로의 이적이 루머로 돌고 있었습니다.)  자우버는 지난해 F3000에서 챔피언을 차지한 펠리페 마싸를 영입했습니다.

 한편 지난해까지 타이틀 스폰서였던 레드불은 자우버에 가지고 있던 지분을 모두 매각하며 자우버와의 관계를 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라이코넨을 영입한것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레드불에서는 엔리케 베르놀디가 라이코넨의 자리에 앉길 원했다고 합니다.)

 하이드펠트가 작년 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마싸도 라이코넨 만큼의 페이스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10그리드 패널티를 받으면서 다음 레이스였던 미국 그랑프리에서는 마싸의 패널티를 없애기 위해 프렌첸이 대신 참가했습니다.) 자우버는 11포인트로 컨스트럭터 5위를 기록했습니다.

 

 2003 - 마싸가 페라리의 테스트 드라이버로 자리를 옮겼고 프렌첸이 7년만에 자우버로 돌아왔습니다. 

 시즌 전체적으로는 지난해와 성적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프렌첸이 미국 그랑프리에서 3위를 차지하며 오랫만에 포디움에 올랐습니다.

 자우버는 바뀐 포인트 규정에 힘입어 19포인트로 컨스트럭터 6위를 차지했습니다.

 

 2004 - 드라이버 라인업이 크게 바뀌었는데 조던을 떠난 피지켈라가 자우버로 들어왔고 페라리의 테스트 드라이버에서 밀려난 마싸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마싸를 선택한 데에는 페라리 엔진에 대한 경험이 많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해부터 자우버는 페라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피지켈라가 시즌 내내 꾸준히 포인트를 벌어들였고 마싸도 피지켈라 만큼은 아니지만 중위권 드라이버들 가운데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며 팀 역사상 가장 많은 34포인트로 컨스트럭터 6위를 차지했습니다.

 

 2005 - 피지켈라가 르노로 떠나고 자크 뷜너브가 르노에서 넘어오면서 드라이버 라인업이 바뀌었습니다.

 자우버에서는 챔피언 출신인 뷜너브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뷜너브의 기량은 예전과 같지 않았고 오히려 마싸가 뷜너브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마싸 11포인트, 뷜너브 9포인트) 자우버는 20포인트로 컨스트럭터 8위를 기록했습니다.

 시즌 도중 레드불이 스폰서십 계약을 종료했고 시즌이 끝난후 BMW가 레드불이 Credit Suisse에 팔았던 지분을 전부 사들이며 팀이 BMW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Sauber C20 (2001)

 

 BMW-자우버

 

 2000년부터 윌리엄스와 손을 잡았던 BMW는 부진한 성적을 놓고 윌리엄스와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결국 윌리엄스와 결별하고 자우버의 지분을 사들이며 자우버는 BMW의 팩토리 팀이 되었습니다. 팀 이름은 자우버-페트로나스에서 BMW-자우버로 바뀌었고 팀의 국적도 스위스에서 독일로 바뀌었습니다.

 

 2006 - 뷜너브가 자리를 유지했고 지난해 윌리엄스에서 달렸던 하이드펠트를 데려와 라인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테스트 드라이버로 지난해 포뮬러 르노 챔피언에 올랐던 로버트 쿠비짜를 앉혔습니다. 팀에서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던 뷜너브 보다 하이드펠트에게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즌 초반까지는 뷜너브가 오히려 하이드펠트보다 더 나은 성적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알렸지만 시즌 중반에 들어오면서 하이드펠트가 페이스를 되찾아 팀의 성적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그랑프리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뷜너브는 결국 헝가리 그랑프리부터 쿠비짜로 대체되었습니다.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하이드펠트가 3위에 오른데 이어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는 쿠비짜가 3위로 커리어 첫 포디움에 오르며 시즌 합계 36포인트로 컨스트럭터 5위에 올랐습니다.

 

 2007 - 하이드펠트가 여전히 팀의 퍼스트 드라이버를 유지했고 나머지 한자리도 지난 시즌 데뷔했던 쿠비짜가 차지했습니다. 쿠비짜가 올라오면서 테스트 드라이버 자리에는 레드불이 키우고 있던 젊은 독일 드라이버가 들어왔는데 이 드라이버가 세바스티안 베텔이었습니다.

 이 해 자우버는 새 레이스카인 F1.07과 신형 엔진 P86/7을 선보였는데 개막전에서 하이드펠트가 4위를 차지하며 심상치 않은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후 하이드펠트는 시즌이 끝날때까지 단 3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포인트를 따내며 (캐나다 2위, 헝가리 3위) 지난해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스페인, 미국 그랑프리에서 리타이어를 기록했고 일본 그랑프리는 레이스 막판 리타이어 했지만 90% 이상 소화했기 때문에 14위를 차지했습니다.)

 쿠비짜도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큰 사고를 당해 미국 그랑프리에 나오지 못한 것을 빼면 시즌 내내 꾸준히 포인트를 따내며 하이드펠트를 보조헀습니다. (미국 그랑프리에 베텔이 쿠비짜 대신 참가하면서 데뷔전을 치뤘습니다.)

 자우버는 시즌 합계 101포인트를 기록했고 맥라렌이 스파이 게이트로 인해 컨스트럭터 포인트를 몰수 당하면서 컨스트럭터 2위까지 차지했습니다.

 

 2008 - 지난해의 성공에 만족한 자우버는 하이드펠트와 쿠비짜의 드라이버 라인업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하이드펠트와 쿠비짜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지난해보다 더욱 페이스를 끌어올렸고 시즌 초반 3경기에서 모두 포디움에 오르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호주 - 하이드펠트 2위, 말레이시아 - 쿠비짜 2위, 바레인 - 쿠비짜 3위)

 스페인과 터키 그랑프리에서 숨을 고른 팀은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쿠비짜가 2위를 차지한데 이어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쿠비짜가 커리어 첫 우승이자 팀의 첫 우승을 이끌었고 하이드펠트가 2위를 차지하며 팀의 첫 원투피니쉬까지 성공했습니다.

 캐나다 그랑프리까지 쿠비짜는 드라이버 챔피언십 선두 (2위 마싸),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2위 (1위 페라리)를 달리며 그야말로 거칠것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즌 중반을 넘어가면서 하이드펠트, 쿠비짜 모두 초반의 기세를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쿠비짜가 3번, 하이드펠트가 2번 더 포디움에 오르며 챔피언십 상위권을 시즌끝까지 유지했습니다.

 결국 쿠비짜가 드라이버 챔피언십 4위, 하이드펠트가 6위에 올랐고 자우버는 135포인트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며 컨스트럭터 3위를 차지했습니다.

 

 2009 - 하이드펠트, 쿠비짜 모두 시트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와 달리 자우버는 개막전부터 어려움을 겪었는데 호주 그랑프리에서 3위를 달리고 있던 쿠비짜가 베텔과 충돌하면서 리타이어를 기록했습니다.

 비로 인해 중단된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하이드펠트가 2위를 차지했지만 헝가리 그랑프리까지 자우버는 단 12포인트만 따내는 극도의 부진에 빠졌습니다.

 시즌 중반 새로운 더블덱 디퓨저와 KERS를 장착했지만 KERS가 오히려 레이스카에 악영향을 주며 결국 KERS를 땐체로 시즌을 치루기로 결정했고 팀에서는 공기 역학 성능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KERS를 시즌 끝까지 사용한 팀은 페라리와 맥라렌 뿐이었습니다.)

 헝가리 그랑프리가 끝나고 F1에 휴식에 들어가있는 사이, BMW는 이사회를 소집했고 공식 발표를 통해 F1에서 철수한다고 밝혔습니다. F1 컨스트럭터 협회인 FOTA에서는 자우버를 시즌 끝까지 유지하도록 협력하겠다고 발표하며 수습에 나섰습니다.

 후반기에는 쿠비짜가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2위를 차지하는등 지난해의 모습을 어느정도 되찾았지만 시즌 합계 36포인트로 컨스트럭터 6위로 떨어졌습니다.

 시즌이 끝난후 피터 자우버가 팀이 F1에 남아있는다는 조건으로 (당시 엔트리 신청을 한 팀이 많아서 1~2팀 정도 참가하지 못할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팀을 다시 사들이며 자우버는 F1 참가를 이어나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BMW-Sauber F1.07 (2008)

  

 다시 자우버로

 

 BMW와 결별하면서 다시 페라리의 엔진을 들여왔습니다. 팀 이름도 바뀔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자우버는 놀랍게도 BMW-자우버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팀의 국적은 독일에서 스위스로 바뀌었습니다. 페라리 엔진을 썼기 때문에 팀 이름은 BMW-자우버-페라리라는 매우 어색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2010 - 하이드펠트와 쿠비짜 모두 팀을 떠난후 자우버는 코바야시 카무이, 페드로 데 라 로사(Pedro De La Rosa)를 영입했습니다.

 프리시즌 테스트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시즌이 시작하면서 자우버는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팀의 시즌 첫 포인트는 7번째 레이스였던 터키 그랑프리가 되서야 따낼수 있었습니다. (코바야시 10위)

 한편 BMW가 철수하면서 대다수의 스폰서들도 자우버와 계약을 끊었기 때문에 시즌 초반 자우버는 밋밋한 리버리로 달려야 했습니다. 이는 시즌 중반이 지나 버거킹이 스폰서로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 해결되었습니다.

 유러피언 그랑프리에서 코바야시가 인상적인 드라이빙을 펼치며 7위를 차지한 것을 기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지만 데 라 로사는 시즌 후반까지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결국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 하이드펠트로 교체되었습니다.

 이 해 자우버는 44포인트로 컨스트럭터 8위에 올랐습니다.

 

 2011 - 부진했던 데 라 로사 대신 세르지오 페레즈와 새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팀 이름도 자우버 F1 팀으로 바뀌면서 BMW의 흔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코바야시가 시즌 초반 꾸준히 포인트를 거두었지만 중반 이후로는 부진에 빠졌고 페레즈도 데 라 로사보다는 나았지만 코바야시에 비해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자우버는 지난해와 똑같은 44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에 올랐습니다.

 

 2012 -  코바야시와 페레즈 모두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큰 변화 없이 시즌을 시작했지만 개막전에서 지난해와 달리 코바야시가 6위, 페레즈가 8위를 차지하며 시즌을 기분좋게 시작했습니다.

 이어진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는 9그리드에서 출발한 페레즈가 레이스 막판 선두였던 알론소를 턱밑까지 추격하면서 2위를 차지했습니다. (레이스 막판 미끄러지지만 않았다면 우승도 가능할뻔 했습니다.)

 페레즈는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다시 3위에 오르며 말레이시아에서의 2위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고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는 레이스 막판 무서운 추격전을 펼치며 2위를 차지했습니다.

 코바야시는 일본 그랑프리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일본 드라이버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그랑프리에서 포디움에 오른 드라이버가 되었습니다.

 페레즈와 코바야시의 활약속에 자우버는 126포인트로 컨스트럭터 6위에 올랐습니다.

 

 2013 - 페레즈가 맥라렌으로 떠난 자리에는 에스테반 구티에레즈(Esteban Gutierrez)가 들어왔고 코바야시 대신 니코 훌켄버그와 계약하며 드라이버 라인업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모니샤 칼텐본 (Monisha Kaltenborn) 이 팀 수석이 되면서 F1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팀 수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새 레이스카인 C32도 선보였는데 시즌 초반부터 다른 팀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도 훌켄버그가 이탈리아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3그리드를 차지한데 이어 레이스에서 5위를 차지했고 코리아 그랑프리에서는 4위를 차지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몇차례 보여주었습니다.

 구티에레즈는 일본 그랑프리에서 로스버그와 배틀을 펼치며 7위에 오른것을 제외하면 시즌 내내 포인트를 따내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자우버는 57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차지했습니다.

 

 2014 - 훌켄버그가 포스인디아로 떠나고 그 자리에는 아드리안 수틸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해 자우버는 처절하게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Q1에서 탈락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고 시즌 내내 두 명의 드라이버는 단 한 포인트도 따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자우버는 0포인트로 컨스트럭터 10위로 추락했습니다. 컨스트럭터들 가운데 시즌 0포인트를 기록한 팀은 자우버를 제외하면 신생팀이었던 캐이터햄이 유일했습니다.

 

 2015 - 지난해 성적에 크게 실망한 자우버는 구티에레즈, 수틸과 모두 계약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스웨덴 출신의 마커스 에릭슨 (Marcus Ericsson), 브라질 출신의 펠리페 나스르 (Felipe Nasr)를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마찰을 심하게 빚기도 했습니다. 

 (원래 기도 반 데 가르드와 드라이버 계약을 맺었지만 에릭슨, 나스르와 계약하며 반 데 가르드는 자리를 잃은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반 데 가르드가 이의를 제기했고 스위스의 중재소에서는 반 데 가르드와의 계약을 준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자우버는 이를 무시했고 반 데 가르드는 결국 호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자산을 압류당할 위기까지 몰린 자우버는 호주 그랑프리 FP1에 불참을 선언했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F1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한 버니 에클스톤의 지시에 의해 FP2에 에릭슨과 나스르의 라인업으로 참가할수 있었습니다.

 결국 반 데 가르드는 자우버에게 1600만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합의했지만 인터뷰에서 사건의 뒷배경을 다시 언급하며 드라이버의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해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고 밝혔습니다. 자우버에서는 합의 조건에 이번 사건에 대한 언급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조항도 들어갔다면서 반박했고 다시 한번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개막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 두 드라이버는 팀이 기대했던 결과를 내며 나스르가 5위, 에릭슨이 8위를 차지했습니다.

 중국 그랑프리 이후 에릭슨이 잠잠한 사이 나스르는 차곡차곡 포인트를 쌓아올렸고 시즌 합계 36포인트로 자우버는 컨스트럭터 8위에 올랐습니다.

 

 2016 - 자우버는 에릭슨, 나스르를 다시 한번 팀의 드라이버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에릭슨과 나스르 모두 부진에 빠지며 나스르가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9위에 오르며 팀의 유일한 포인트를 안겨준데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즌 중반 스위스의 투자 회사인 롱보우 파이낸스 (Longbow Finance) 가 피터 자우버와 칼텐본의 지분을 모두 사들이며 팀의 새 소유주가 되었습니다. 피터 자우버와 칼텐본은 자리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 때까지 자우버의 개인 재산으로 운영되던 팀은 직원들의 임금까지 체불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자우버는 시즌 합계 2포인트로 컨스트럭터 10위를 차지했습니다.

 

 2017 - 나스르와의 계약은 포기했지만 에릭슨과는 제계약을 맺었고 나머지 한자리에는 파스칼 베를라인 (Pascal Wehrlein) 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베를라인이 시즌전 큰 사고를 당하면서 프리시즌 테스트에 불참했고 호주 그랑프리에서는 연습 주행을 소화하던 도중 이상을 느껴 그랑프리를 포기했습니다. 이에 페라리의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안토니오 지오비나찌 (Antonio Giovinazzi) 를 베를라인의 대타로 급하게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시즌 초반 자우버는 혼다와 엔진 공급 계약에 합의했지만 7월에 계약을 취소하고 말았습니다.

 바레인 그랑프리부터 돌아온 베를라인이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8위,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에서 10위를 차지하며 팀을 이끈 반면 에릭슨은 그때까지 1포인트도 따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가 끝나고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칼텐본이 수석에서 물러났고, 그 자리에는 르노의 팀 수석을 지내기도 했던 프레데릭 바써 (Frederic Vasseur) 가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에릭슨과 베를라인은 1포인트도 얻어내지 못했고 연습 주행에서는 하위 카테고리를 휩쓸며 페라리의 테스트 드라이버까지 오른 샤를 르끌레르가 얼굴을 보이며 F1 관계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자우버는 시즌 합계 5포인트로 컨스트럭터 10위를 차지했습니다.

 

 2018 - 지난 시즌 베를라인이 더 좋은 성적을 냈지만 팀에서는 베를라인과의 계약을 포기하고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르끌레르를 팀의 새 드라이버로 낙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혼다와의 엔진 공급 계약이 취소되면서 페라리와 다년간의 엔진 공급 계약을 새로 맺었습니다.

 개막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 르끌레르는 13위를 차지했지만 관계자들 사이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르끌레르는 시즌을 치루면서 점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시즌 후반에는 Q3 진출이 이슈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반면 에릭슨은 지난해보다 나아졌지만 루키였던 르끌레르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드라이버 챔피언십 순위에서도 르끌레르보다 떨어진 17위를 기록했습니다. (르끌레르 13위)

 자우버는 48포인트로 컨스트럭터 8위를 차지했습니다.

 

 

Sauber C31 (2012)

 

 알파로메오

 

 알파로메오는 2017년 자우버와 다년 간의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바써는 알파로메오가 자우버를 인수할 계획이 있다고 밝히면서 알파로메오의 F1 참가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결국 알파로메오는 2019년 자우버가 알파로메오라는 이름으로 F1에 참가한다고 공식으로 발표했습니다. 다만 팀의 소유와 운영체제는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습니다.

 

  2019 - 르끌레르가 페라리로 자리를 옮기고 라이코넨이 알파로메오로 옮겨왔습니다. 팀 이름은 바뀌었지만 라이코넨은 데뷔를 했던 자우버로 돌아온 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4년간 자리를 지켰던 에릭슨이 홍보 대사 역할로 물러났고 그 자리에는 지오비나찌가 새 드라이버로 들어왔습니다.

 새 레이스카인 C38은 프리시즌부터 파격적인 프론트윙 디자인으로 화제를 몰았고 괜찮은 기록을 내면서 기대를 모았습니다.

 시즌 초반 라이코넨이 4경기 연속으로 포인트를 따내며 팀을 이끌었지만 시즌이 지나면서 점점 업데이트에서 밀린 알파로메오는 경쟁력을 빠르게 잃어갔습니다.

 지오비나찌가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 처음으로 포인트를 얻었지만 독일 그랑프리에서는 클러치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포인트를 잃기도 했습니다.

 후반기 들어 라이코넨의 페이스가 점점 떨어졌고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라이코넨이 4위, 지오비나찌가 5위를 차지한걸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결과를 내지 못한채 시즌을 마쳤습니다.

 알파로메오는 57포인트로 컨스트럭터 8위에 올랐습니다.

 

 이것으로 알파로메오의 팀 역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다음에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인기를 얻고 있는 F1의 막내팀 하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F1
7
Comments
1
2020-05-07 14:29:33

알파로메오 오래 기다렸습니다!
선추천 드리고 천천히 읽은 후에
다시 글 남기겠습니다

WR
2020-05-08 12:16:59

 감사합니다. 

1
2020-05-07 22:42:14

F1 역사 잘 모를 때 알파로메오가 다시 복귀한다 하자 "왜 올까?"라는 생각 했는데

알고보니 페라리 못지 않은 역사를 가진 팀이었죠.

WR
2020-05-08 12:18:36

 저도 지금의 알파로메오 이미지만 생각하고 있다가 깜짝 놀랐었죠. 

1
2020-05-09 10:59:52

피에로 타루피는 사실 페라리 소속으로 보여준게 더 많아서

알파로메오의 대표 선수라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타루피가 알파로메오 소속으로 치룬 F1 경기는 딱 한경기..그것도 최초의 F1이던

1950시즌 최종전인 7차전 이탈리아 그랑프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였습니다. 

 

알파로메오는 이래저래 전설적인 팀이죠

좀 어거지이긴 하지만 창단 첫해 첫 레이스 우승과 월드 챔프를 달성한 팀이고 

(브런 GP도 여기 해당하죠)

파리냐, 판지오, 파지올리의 3F

그리고 전설의 명차 158 Alfetta!! 

 

자우버의 이름을 그리워 하는 올드 팬들도 더러 있는걸로 압니다.

심지어 키미도 자우버에서 커리어를 마무리 하게 될 줄 알았는데

팀명이 알파로메오로 바뀌어서 조금 아쉬워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전 자우버 하면 첼시 스폰서가 먼저 떠오릅니다. 2010년대 초 F1 보다가 

축구팀이 스폰서를 다 하네? 라고 생각했던게 기억나네요 

케로님 방송 보다보니 2000년대 초 레드불 리버리 달고 달리던 퀵 닉의 모습도 떠오르기도 하구요

 

사실 알파로메오의 F1 복귀는 좀 의외였습니다

회사 사정이 별로 좋지 못한걸로 아는데

FCA 회장이였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굉장히 강하게 밀어부쳤다고 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르치오네는 BMW의 F1 철수는 실수라고 평했다는데

사실 페라리가 FCA 산하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알파로메오를 더 밀어주게 된거라고도 하더군요)

헌데 마르치오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려서 알파로메오 복귀는 붕 뜨게 되는줄 알았는데 

뜬금 자우버를 완전히 먹어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WR
2020-05-09 14:29:29

 저 부분은 수정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첼시가 스폰서로 있던 시절 인테이크 뒷쪽에 첼시 로고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는데 안어울리면서 어울리는 묘한 느낌이었죠.

 마르치오네 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의욕적으로 벌이던 일이 많았었죠. F1으로 한정하면 르끌레르를 페라리로 올리려는 것도 있었고요. 그 때문에 재작년에 르끌레르를 두고 얘기가 많았었죠. 

 요새 자우버에 대한 지원이 시원치 않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어서 약간 걱정되긴 합니다.

 

1
2020-05-09 14:44:37

알파로메오 재정이 꽤 안좋은걸로 알고있어요
유럽은커녕 이탈리아 내수시장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하더군요
마르치오네 회장 생전엔
알파로메오의 한국진출도 계획에 있었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지금은 쏙 들어간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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