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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F1 역사] 뿌리를 찾아서 - 레이싱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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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5-02 01: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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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도 조금씩 끝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이번에는 짧은 역사에도 팀명이 많이 바뀌었던 레이싱포인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BWT Racing Point F1 Team

 

 이전 팀들

 

 조던 (Jordan Grand Prix, 1991 ~ 2005)

 미들랜드 (Midland, 2006)

 스파이커 (Spyker, 2007)

 포스인디아 (Force India, 2008 ~ 2018)

 레이싱포인트 (RacingPoint, 2018 ~ 2020)

 애스턴 마틴 (Aston Martin, 2021 예정)

 

 대표적인 드라이버

 

 조던 - 미하엘 슈마허, 루벤스 바리첼로, 에디 어바인, 랄프 슈마허, 데이먼 힐, 하인츠-하랄드 프렌첸, 야노 트룰리, 지안카를로 피지켈라, 닉 하이드펠트

 미들랜드 - 티아고 몬테로, 크리스티안 알버스

 스파이커 - 아드리안 수틸, 마르쿠스 윈켈록

 포스인디아 - 아드리안 수틸, 지안카를로 피지켈라, 폴 디 레스타, 세르지오 페레즈, 니코 훌켄버그, 에스테반 오콘

 레이싱포인트 - 세르지오 페레즈, 랜스 스트롤 

 

 역사

 

 조던

 

 Eddie Jordan Racing

 

 조던 그랑프리는 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에디 조던이 창단한 팀입니다. 에디 조던 자신도 F3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잠시나마 F2까지 올라갔고 맥라렌의 테스트를 잠깐 받기도 했던 드라이버 출신이었습니다.

 F1 팀을 창단하기 전인 1979년 조던은 에디 조던 레이싱 (Eddie Jordan Racing) 이라는 팀을 만들어 유러피언 F3와 브리티시 F3, F3000등에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조던 팀을 거쳐간 드라이버들로는 마틴 브런들, 쟈니 허버트, 마틴 도넬리, 장 알레시, 에디 어바인 등이 있었습니다.

 

 Jordan Grand Prix

 

 하위 카테고리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조던은 팀 이름을 조던 그랑프리로 바꾸며 1991년 F1에 진출했습니다.

 

 1991 - 첫 시즌 조던은 포드 엔진을 쓰기로 결정했고 안드레아 드 체자리스, 베르트랑 가쵸 (Bertrand Gachot) 의 드라이버 라인업을 구성했습니다.

 다른 신생팀들과 마찬가지로 조던도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캐나다 그랑프리를 지나면서 성적이 급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체자리스가 4위, 가쵸가 5위를 기록한 이후 독일 그랑프리까지의 5번의 레이스에서 3번의 리타이어 (체자리스 1, 가쵸 2)를 제외하면 체자리스와 가쵸 모두 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분위기도 오래가지 않았는데 여름 휴가 기간에 가쵸가 택시 기사를 폭행한 죄로 감옥에 수감되며 팀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조던은 가쵸의 자리를 대신할 드라이버를 물색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메르세데스에서 15만 달러를 지불하는 댓가로 젊은 독일 드라이버에게 경험을 줄겸 시트에 앉혀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 드라이버는 미하엘 슈마허였습니다.

 조던은 이에 동의했고 슈마허는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데뷔전을 치루었지만 단 한경기만 치루고 베네통으로 이적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노한 조던은 소송까지 걸었지만 베네통으로 이적하는 시점에서 아직 조던과 정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조던은 알레산드로 자나르디, 로베르토 모레노를 세컨 드라이버로 기용하며 남은 시즌을 치루었고 시즌 합계 13포인트로 컨스트럭터 5위를 차지하며 나쁘지 않은 데뷔 시즌을 마쳤습니다.

 

 1992 - 지난 시즌의 성공으로 조던은 많은 상금을 거머쥐었지만 비용을 아끼기 위해 엔진 공급 업체를 야마하로 교체했습니다.

 드라이버 라인업도 스테파노 모데나, 마우리치오 구겔마인(Mauricio Gugelmin)으로 대폭 물갈이 했지만 성적은 곤두박질 치며 모데나가 최종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 거둔 6위로 얻은 1포인트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결국 조던은 컨스트럭터 11위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1993 - 야마하에 실망한 조던은 새 엔진 공급 업체로 하트(Hart)를 선택했습니다. 드라이버 라인업도 다시 한번 개편을 하며 이반 카펠리와 브라질 출신 루키 드라이버였던 루벤스 바리첼로로 꾸렸습니다.

 그러나 바리첼로만 시즌 끝까지 시트를 유지했고 카펠리를 비롯해 티에리 부센, 마르코 아피첼라 (Marco Apicella), 에마누엘레 나스페티 (Emanuele Naspetti), 마지막에는 에디 어바인까지 바리첼로의 팀메이트로 달렸습니다. 그 중 가장 나았던 드라이버는 어바인이었는데 일본 그랑프리에서 백마커까지 떨어졌지만 선두였던 세나를 언랩 (백마커 상태에서 1랩 이상 앞선 드라이버를 추월하는 일) 까지 하며 데뷔전에서 6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안좋은 날씨 속에서 자신을 위험에 빠트리려 했다고 생각한 세나는 조던 팀 차고에 쳐들어가 어바인에게 주먹을 휘두르기까지 했습니다. (원인은 말싸움 도중에 세나를 밀친 어바인이 제공하긴 했습니다.)

 조던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컨스트럭터 11위를 차지했지만 3포인트를 거두며 작년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994 - 이 해에는 하트의 엔진을 그대로 썼고 바리첼로와 어바인의 드라이버 라인업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개막전에서 어바인이 위험한 드라이빙을 펼쳤다는 이유로 3경기 출장 금지를 당하며 시작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리첼로도 개막전인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4위를 차지한데 이어 오카야마 서킷에서 열린 퍼시픽 그랑프리에서 3위로 커리어 첫 포디움에 올랐지만 뒤이어 열린 산마리노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라첸베르거와 세나의 사망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바리첼로의 사고도 200킬로가 넘는 속도로 방호벽을 들이받은 위험한 사고였습니다.)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체자리스가 4위를 거두며 팀의 기대를 채워주며 떠났고 그 자리에는 어바인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체자리스는 남은 시즌 자우버에서 달리게 됩니다.) 바리첼로도 사고의 충격을 극복하고 곧바로 다음 레이스부터 참가하기 시작한 조던은 점점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씨 속에서 치뤄진 벨기에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도박을 던진 것이 그대로 적중하며 바리첼로가 팀의 역사상 첫 폴포지션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바리첼로가 시즌 내내 인상적인 모습을 펼치고 어바인도 후반기 포인트를 보탠 조던은 시즌 합계 28포인트로 컨스트럭터 5위에 올랐고 바리첼로도 19포인트로 드라이버 챔피언십 6위에 오르며 F1에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1995 - 지난해의 성적에 고무된 조던은 더 큰 성공을 위해 하트 대신 푸조를 새 엔진 공급 업체로 선택했습니다.

 드라이버 라인업은 바리첼로와 어바인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시즌 내내 중위권을 맴돌며 지난해와 같은 성공은 거두지 못했습니다.

 다만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바리첼로가 2위, 어바인이 3위를 거두며 더블 포디움에 오르며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조던은 시즌 합계 21포인트로 컨스트럭터 6위를 차지했습니다.

 

 1996 - 어바인이 페라리로 떠나자 조던은 그 자리에 마틴 브런들을 데려왔습니다. 

 작년에 포디움에 올랐던 반면 이 시즌에는 포디움에 한 차례로 오르지 못했지만 바리첼로, 브런들 모두 꾸준히 포인트권의 성적을 거두며 시즌 합계 22포인트로 컨스트럭터 5위를 차지했습니다.

 

 1997 - 바리첼로가 신생팀인 스튜어트로 떠나고 브런들이 은퇴한 조던은 미나르디에서 지난해까지 달렸던 지안카를로 피지켈라를 데려왔고 슈마허의 동생인 랄프 슈마허를 데뷔시켰습니다. 그리고 피지켈라와 슈마허 모두 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며 총 3번의 포디움에 올랐습니다. 독일 그랑프리에서는 피지켈라가 우승 직전까지 갔지만 타이어에 펑쳐가 일어나면서 라디에이터까지 크게 손상되는 바람에 리타이어 하고 말았습니다.

 조던은 합계 33포인트로 컨스트럭터 5위를 유지했습니다.

 

 1998 - 피지켈라가 떠난 조던은 그 자리에 1996 시즌 챔피언이었던 데이먼 힐을 데려오는데 성공했습니다. 힐과는 이미 F3000 시절 함께했던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푸조를 대신해 무겐 혼다 ( 혼다를 세운 혼다 소이치로의 아들 히로토시가 만든 회사) 를 새 엔진 공급 업체로 선택했습니다.

 시즌 초반에는 신뢰성 문제가 발목을 잡으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티렐의 엔지니어였던 마이크 개스코인(Mike Gascoyne)을 데려오면서 신뢰성 문제가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단 6대만 완주에 성공하는 상황 속에서 힐이 조던의 첫 F1 우승을 가져다 주었고 슈마허도 2위를 기록하며 팀의 첫 원투 피니쉬까지 이끌어 냈습니다.

 힐이 드라이버 챔피언십 6위, 슈마허가 10위를 차지한 조던은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도 34포인트로 4위에 올랐습니다.

 

 1999 - 슈마허가 윌리엄스로 떠나고 윌리엄스에서 프렌첸이 조던으로 넘어오면서 마치 트레이트 처럼 드라이버가 자리를 맞바꾸었습니다.

 힐이 시즌 내내 부진에 시달렸지만 프렌첸의 기량이 만개해 2승과 7번의 포디움에 올랐고 시즌 중반에는 잠시나마 챔피언십 경쟁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프렌첸의 대활약에 힘입어 조던은 61포인트로 컨스트럭터 3위에 오르며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Jordan 199 (1999)

 

 

 2000 -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힐이 은퇴를 선언한 조던은 그의 빈자리를 누구로 매꿀지가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결국 프로스트와 미나르디에서 달렸던 야노 트룰리를 선택했지만 트룰리는 퀄리파잉에서 힐보다 나았을지 몰라도 레이스에서는 그만큼의 성적을 내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프렌첸도 지난해의 영광을 재현하는데 실패하며 두 번의 포디움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결국 조던은 합계 17포인트로 1년만에 컨스트럭터 6위로 추락했습니다.

 

 2001 - 프렌첸과 트룰리의 라인업을 그대로 유지하며 시즌을 시작한 조던은 무겐 혼다 대신 혼다를 엔진 공급 업체로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긍정적으로 작용해 지난해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중반 프렌첸이 팀을 이끌고 있던 에디 조던과 갈등을 빚으며 팀을 떠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급한대로 독일 그랑프리에서는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리카르도 존타가 프렌첸을 대신했고 나머지 시즌 동안에는 F1 커리어 마지막을 달리고 있던 장 알레시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조던은 시즌 합계 19포인트로 컨스트럭터 5위에 올랐고 이는 같은 혼다 엔진을 쓰는 라이벌이었던 BAR보다 높은 순위였습니다.

 

 2002 - 피지켈라가 다시 조던으로 돌아왔고 에디 조던이 프렌첸을 내보내면서 얘기했던 대로 혼다를 위해 사토 타쿠마를 피지켈라의 팀메이트로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타이틀 스폰서였던 Benson & Hedges가 떨어져 나가면서 자금 압박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팀의 전력도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피지켈라와 사토가 가끔씩 포인트를 따내고 피지켈라가 퀄리파잉에서 가끔씩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팀의 성적을 유지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결국 조던은 1993 시즌 이후 최악의 성적인 9포인트를 기록하며 컨스트럭터 6위로 밀려났습니다.

 

 2003 - 그동안 엔진을 공급해 오던 혼다까지 BAR에 주력하기 위해 조던과의 관계를 끊고 말았습니다. 결국 조던은 울며 겨자먹기로 포드-코스워스 엔진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시즌 전체적으로는 부진했지만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피지켈라가 혼란한 틈을 타 라이코넨을 재치고 우승을 차지했던 것은 그나마 위안이었습니다. 

 (이때 24대 중에 9대만 완주에 성공했고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레이스가 막판에 중지되었습니다. 중지된 시점에 라이코넨이 선두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몇일 후 다시 조사한 결과 피지켈라가 먼저 새 랩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승자가 피지켈라로 바뀌었습니다. 3위를 차지했던 알론소가 레이스가 중지되기 직전 큰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시상식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고 다음 레이스였던 산마리노 그랑프리 그리드 위에서 트로피를 교환하는 이벤트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한편 시즌 중반 조던 팀의 운명에 결정타를 가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에디 조던이 보다폰 (Vodafone, 전셰게 최대의 다국적 통신 회사. F1에서는 맥라렌의 스폰서로 유명했습니다.) 이 조던 팀과 3년 간 스폰서 계약을 맺기로 구두로 합의했지만 페라리와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보다폰을 고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달 후, 조던은 돌연 태도를 바꾸어 보다폰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며 고소를 취하해 버렸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웠던 자금 사정에 이 사건까지 겹치면서 조던 팀의 재정 상황은 손댈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조던은 13포인트로 컨스트럭터 9위로 밀려났습니다.

 

 2004 - 이제 조던 팀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처지가 되었지만 닉 하이드펠트, 조르지오 판타노를 영입하면서 레이스는 이어나갔습니다.

 하이드펠트는 분전했지만 레이스카의 떨어지는 성능을 매꾸기에는 역부족이었고 판타노는 스폰서십 문제로 시즌 중반 방출되고 말았습니다.

 티모 글락이 판타노를 대신해 들어왔고 시즌 후반 스폰서십 문제가 해결된 판타노가 다시 글락을 대신하며 어수선한 시즌을 보낸 조던은 지난해보다 더 떨어진 5포인트로 컨스트럭터 9위를 기록했습니다.

 

 2005 - 포드가 코스워스를 매각하면서 조던은 엔진이 없는 채로 시즌을 시작할 처지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토요타에서 조던에 엔진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시즌을 어렵게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결국 시즌 초반, 재정난을 이기지 못한 조던은 팀을 다국적 투사 회사인 미들랜드 그룹에 6000만 달러에 매각했습니다. 그러나 미들랜드가 F1에 장기적으로 참가할지에는 의문부호가 붙었고 이에 어바인이 팀을 구입하는데 관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조던이라는 이름으로 치루는 마지막 시즌 루키 드라이버였던 나래인 카티카얀, 티아고 몬테이로를 영입했지만 시즌 내내 성적은 바닥을 찍었고 인디 게이트에 힘입어 몬테이로가 3위를 차지한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결국 조던은 12포인트로 컨스트럭터 9위를 차지했고 조던이라는 이름은 F1에서 옛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1번 조연, 미들랜드

 

 미들랜드 그룹에서 조던 팀을 사들이며 팀 이름을 Midland F1 Racing으로 바꾸었고 미들랜드는 F1 역사상 첫 러시아 팀이 되었습니다. 원래 미들랜드는 재규어와 조던 팀을 사는 방안과 직접 F1 팀을 창단하는 방안을 놓고 저울질 하고 있었지만 새 팀을 창단할 경우 가입금으로 4800만 달러를 내는 것에 부담을 느껴 결국 조던 팀을 사들이게 되었습니다.

 엔진은 토요타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고 섀시는 이탈리아 업체인 달라라 (Dalllara, 현재  F2, F3에 섀시를 공급하는 회사입니다.) 와 계약을 맺었지만 달라라에서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 중간에 계약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팀의 테크니컬 디렉터에 제임스 키를 승진시키며 개편을 마쳤습니다.

 미들랜드 그룹을 소유하고 있던 알렉스 쉬나이더 (Alex Shnaider) 는 줄곧 미들랜드에 러시아 드라이버를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에 걸맞는 러시아 그라이버를 찾는데 실패했고 결국 크리스티안 알버스, 티아고 몬테이로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시즌이 시작되었지만 미들랜드는 조던 시절보다 오히려 전력이 약해져 있었고 슈퍼 아구리를 제외하면 어느 팀과도 경쟁이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시즌 중반을 지나며 점점 전력이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팀이 매각될지도 모른다는 루머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미들랜드 팀의 가치는 조던을 사들인 2005년보다 두배가 넘는 1억 2800만 달러로 평가되었는데 이는 12팀이 모두 채워져 신생팀이 추가될 수 없기에 F1 팀 모두의 가치가 올라간 영향이 컸습니다.

 결국 미들랜드는 2006년 9월 네덜란드의 스포츠카 회사인 스파이커에 1억 660만 달러에 매각되었습니다. 이후 남은 시즌 동안에는 Spyker MF1 Racing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하며 0포인트로 컨스트럭터 최하위를 차지했습니다.

 

 

Midland M16 (2006)

 

 

 2번 조연, 스파이커

 

 미들랜드로부터 팀을 사들인 스파이커는 기존의 수뇌부를 유지한채 기술 책임자로 조던 시절 팀을 끌어올린 적이 있던 개스코인을 영입했습니다.

 타이틀 스폰서로 에티하드 항공과 부동산 업체인 Aldar가 들어왔고 엔진은 토요타 대신 페라리의 2006년형 엔진을 들여왔습니다.

 드라이버로는 미들랜드 시절부터 달렸던 알버스를 그대로 유지한채 아드리안 수틸로 나머지 한자리를 채웠습니다.

 이렇게 분주하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미들랜드 시절과 비교해도 딱히 나아진 모습은 없는채 시즌이 흘러갔습니다. 거기에 영국 그랑프리가 끝난 후 알버스가 스폰서십 머니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팀에서 방출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알버스의 자리는 마르쿠스 윈켈록이 대신했다가 헝가리 그랑프리 이후로는 야마모토 사콘이 시즌이 끝날때까지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일본 그랑프리에서 수틸이 8위를 기록하며 팀에게 첫 포인트를 안겨주었지만 그것이 고작이었고 스파이커는 1포인트로 컨스트럭터 10위를 차지했습니다.

 시즌 중반부터 스파이커 팀이 모회사인 스파이커로부터 분리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스파이커에서 팀을 매각할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 팀이 시장에 올라왔습니다. 결국 인도의 사업가인 비제이 말라야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에서 팀을 매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스파이커도 1년만에 F1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Spyker F8-VII (2007)

 

 

 포스 인디아

 

 말라야의 컨소시엄은 스파이커 팀을 8800만 유로에 사들이고 팀 이름을 포스 인디아 F1 팀 (Force India F1 Team)으로 결정했습니다. 팀 이름 답게 인도 국적이었지만 미들랜드나 스파이커 처럼 조던 시절부터 꾸렸던 실버스톤의 팩토리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퍼스트 드라이버로 수틸을 확정지은 팀은 세컨 드라이버를 찾기 위해 겨울동안 테스트에 몰두했습니다. 결국 피지켈라가 수틸의 파트너로 확정되었고 리저브 드라이버는 비탄토니오 리우찌가 되었습니다.

 스파이커보다 재정이 넉넉해지면서 포스 인디아는 EADS (에어버스의 방위 산업체) 로부터 풍동을 제공받는등 여건이 나아졌습니다.

 

 2008 - 팀의 첫 해 목표는 스파이커 시절 경쟁자였던 슈퍼 아구리를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개막전에서는 수틸과 피지켈라 모두 초반에 리타이어하고 말았습니다.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는 수틸이 라이코넨과 부딪히며 포인트 획득에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개스코인은 라이코넨에게 패널티를 줘야한다고 격분했지만 심판진에서는 오히려 옐로 플래그 상황에서 추월했다는 이유로 수틸에게 패널티를 주는 바람에 포인트 권에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시즌 중반을 지나면서 팀의 전력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지만 경쟁자인 슈퍼 아구리가 F1에서 철수하면서 포스 인디아는 그리드 가장 뒤쪽을 차지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피지켈라가 이탈리아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12그리드를 차지했고 싱가포르와 브라질에서는 레이스에서 2위와 5위를 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는 타이어 교체 타이밍을 잘못 잡아서, 그리고 브라질에서는 기어 문제가 덮치면서 모두 포인트 획득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포스인디아는 0포인트로 컨스트럭터 10위를 차지했습니다.

 

 2009 - 포스 인디아는 새 엔진 공급 업체로 메르세데스를 선택했고 5년 간의 엔진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이 계약에는 맥라렌과 메르세데스가 만든 기어박스, 유압계통, 그리고 KERS까지 공급받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팀의 전력은 크게 향상되었고 중국 그랑프리에서 수틸이 레이스 막판까지 6위를 기록하기도 헀습니다.

 포인트 획득 문턱에서 여러 차례 주저앉았던 포스 인디아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피지켈라가 무려 폴포지션을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피지켈라는 레이스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며 라이코넨과 단 1초 차이로 2위에 오르며 팀의 첫 포인트와 첫 포디움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팀에서는 KERS때문에 우승을 놓쳤다고 불평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포스인디아의 KERS는 맥라렌이 아닌 페라리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시즌 후반 피지켈라가 마싸의 부상으로 빈자리가 생긴 페라리로 떠나면서 리우찌가 남은 시즌 피지켈라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는 수틸이 2그리드, 리우찌가 7그리드를 차지했고 레이스에서는 수틸이 패스티스트 랩을 찍으며 4위를 차지했습니다.

 포스 인디아는 시즌 합계 13 포인트로 토로로쏘를 재치고 컨스트럭터 9위를 차지했지만 여기에 메르세데스의 영향이 컸다는 것은 다음 시즌에 대한 불안 요소였습니다.

 

 2010 - 포스 인디아는 수틸과 리우찌의 드라이버 라인업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테스트 드라이버로는 폴 디 레스타를 영입했습니다.

 시즌 개막전이었던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리우찌가 9위를 기록하며 포인트를 따낸 포스 인디아는 호주 그랑프리에서도 리우찌가 7위를 기록했습니다. 수틸은 3번째 레이스였던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5위를 차지하며 2경기동안 따낸 포인트를 한번에 벌어들였습니다.

 이후 리우찌는 13포인트를 벌어들인데 비해 (코리아 그랑프리 6위 포함) 수틸은 꾸준히 중위권에 들며 37포인트를 벌어들였고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바리첼로에 이어 11위에 올랐습니다.

 수틸과 리우찌가 활약한 포스 인디아는 68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에 올랐습니다. 

 

 2011 - 리우찌를 대신해 포스 인디아는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디 레스타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레이스카인 VJM04를 선보였는데 이 차는 현재까지 팀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있는 앤드류 그린 (Andrew Green) 의 첫 작품이었습니다. 

 호주 그랑프리에서 수틸과 디 레스타는 11, 12위를 차지했지만 자우버가 기술 규정 위반으로 실격 처리 되면서 9, 10위로 더블 포인트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수틸과 디 레스타는 꾸준히 포인트를 벌어들였고 (수틸 - 8경기 40포인트, 디 레스타 - 7경기 29포인트) 포스 인디아는 69포인트로 컨스트럭터 6위에 올랐습니다. 자우버, 토로로쏘, 윌리엄스를 재친것은 물론이고 5위를 차지한 르노와는 불과 4포인트 차이의 좋은 결과였습니다.

 

 2012 - 팀에서는 디 레스타를 그대로 유지한채 수틸을 대신해 리저브 드라이버였던 니코 훌켄버그를 올렸습니다. 이 해에는 쥘 비앙키가 리저브 드라이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거세졌던 바레인 그랑프리에서는 사망한 시위자를 위해 항의하는 뜻에서 팀원들이 참가를 거부하기도 했지만 이 때문에 버니 에클스톤과 포스 인디아 사이에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시즌 내내 디 레스타가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 4위에 오르는 등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훌켄버그가 첫 해임에도 불구하고 유러피언 그랑프리 5위, 벨기에 그랑프리 4위, 브라질 그랑프리 5위를 기록하는 등 디 레스타를 뛰어넘는 성적을 기록하며 드라이버 챔피언십 11위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에 힘입어 포스 인디아는 109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기록했습니다.

 

 2013 - 자우버로 떠난 훌켄버그를 대신해 포스 인디아는 스틸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개막전에서 수틸이 7위, 디 레스타가 8위를 기록하며 기분좋게 시즌을 시작한 포스 인디아는 수틸과 디 레스타 모두 시즌 중반 부진을 겪으며 지난 시즌 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시즌 합계 77포인트를 기록했지만 컨스트럭터 순위는 오히려 올라가 6위를 기록했습니다.

 

 2014 - 훌켄버그가 다시 돌아왔고 세르지오 페레즈가 새롭게 계약을 맺었습니다. 

 개막전에서 훌켄버그가 6위, 페레즈가 10위를 기록한 포스 인디아는 강력한 메르세데스의 파워 유닛을 등에 업고 순항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레인 그랑프리에서는 페레즈가 5그리드를 차지한데 이어 레이스에서는 순위를 더욱 끌어올려 3위로 팀의 첫 포디움을 안겨주었습니다. 

 훌켄버그, 페레즈 모두 시즌 내내 이렇다 할 슬럼프 없이 꾸준히 10위 안쪽의 성적을 기록한 포스 인디아는 지난해보다 두배가 넘는 155포인트를 벌어들이며 맥라렌에 이어 컨스트럭터 6위를 차지했습니다.

 

 2015 - 훌켄버그와 페레즈 모두 계약에 성공하며 드라이버 라인업을 유지했지만 프리시즌 테스트에 일부 참가하지 못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이때 이미 임금이 체불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품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부품이 없어 테스트 초반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준비된 레이스카는 지난해에서 약간 업데이트된 정도에 그쳤습니다. 호주 그랑프리에서 훌켄버그가 7위를 기록했지만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었고 시즌 중반 대규모 업데이트를 거치고 나서야 성능을 끌어올릴수 있었습니다.

 시즌 중반을 지나면서 훌켄버그와 페레즈의 성적도 덩달아 오르기 시작하며 페레즈가 벨기에에서 5위, 이탈리아에서 6위, 싱가포르에서 7위를 차지했고 훌켄버그도 오스트리아, 일본, 멕시코에서 6위를 거두었습니다.

 러시아에서 페레즈가 다시 한번 3위로 포디움에 오른 포스 인디아는 136포인트를 기록하며 컨스트럭터 5위로 올라섰습니다.

 

 2016 - 팀은 3년 연속으로 훌켄버그, 페레즈의 드라이버 라인업을 유지했습니다.

 작년과 달리 레이스카 준비도 순조롭게 이루어졌지만 시즌 초반 페레즈와 훌켄버그 모두 주춤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페레즈 8포인트, 훌켄버그 6포인트)

 그러나 모나코 그랑프리를 기점으로 훌켄버그와 페레즈 모두 페이스를 되찾았고 페레즈는 모나코, 아제르바이잔 (첫 해에는 유러피언 그랑프리로 치뤄졌습니다.)에서 포디움에 올랐습니다. 

 이후 훌켄버그, 페레즈 모두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특히 페레즈는 독일 그랑프리 이후 10경기에서 모두 포인트를 획득할 정도로 꾸준했습니다.  (시즌 연속 포인트 경기에서 로스버그 (16경기), 리카르도 (11경기)에 이어 3위)

 두 드라이버의 활약에 힘입어 포스 인디아는 173포인트를 기록하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고 컨스트럭터 순위에서도 윌리엄스, 맥라렌을 재치고 4위로 뛰어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17 - 르노에서 훌켄버그를 영입하면서 빈자리가 생겼고 포스 인디아는 지난 시즌 매노어 팀에서 데뷔 시즌을 소화한 에스테반 오콘을 데려왔습니다.

 이 해 BWT (오스트리아의 정수 업체) 가 스폰서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핑크색 리버리를 선보여 팬들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를 낳기도 했습니다.

 페레즈는 지난해에 이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오콘도 첫 풀시즌을 무난하게 소화하며 첫 5경기 동안 두 명 모두 포인트를 획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스페인 그랑프리에서는 페레즈가 4위, 오콘이 5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는 두 명 모두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아제르바이잔 (페레즈 리타이어), 벨기에 (페레즈 17위), 브라질 (오콘 리타이어)를 제외하면 전경기 더블 포인트에 성공할 정도로 꾸준한 모습을 시즌 내내 보여주었습니다. (더블 포인트 경기수에서 메르세데스(19)에 이어 2위)

 이 해 포스 인디아는 역대 최고였던 지난해를 뛰어넘어 187포인트로 컨스트럭터 4위를 지켜냈습니다. (3위였던 레드불과 181포인트 차이였지만 5위였던 윌리엄스와도 104포인트 차이였습니다.) 

 

 2018 - 작년과 재작년 중위권에서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포스 인디아는 페레즈, 오콘의 드라이버 라인업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시즌 초반부터 페이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호주 그랑프리에서 페레즈가 11위, 오콘이 12위를 기록하며 포인트 행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에서 페레즈가 포디움에 올랐지만 오콘은 레이스 초반 사고로 리타이어 하고 말았고 스페인 그랑프리에서는 연료가 새는 바람에 2경기 연속으로 리타이어 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와 달리 기복이 심했던 포스 인디아는 악화되던 재정난을 이기지 못해 결국 파산신청을 하고 영국 고등법원의 관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포스 인디아의 채무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는데 여기에는 팀의 드라이버였던 페레즈가 스폰서들을 대신해 행사한 채무 관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피에르 가르뎅, 랄프 로렌에 투자하며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던 로렌스 스트롤이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 포스 인디아를 사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컨스트럭터 포인트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는데 헝가리 그랑프리까지의 컨스트럭터 포인트만 삭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팀의 문제가 해결된 영향인지 후반기 첫 레이스였던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페레즈가 5위, 오콘이 6위로 기분좋게 시작한 포스 인디아는 시즌 합계 52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차지했습니다. (전반기 성적은 59포인트로 이를 더하면 5위를 기록한 하스의 93포인트를 넘는 결과입니다.)

 

Force India VJM10 (2017)

 

 레이싱포인트

 

 포스 인디아를 사들인 컨소시엄은 2018 시즌이 끝난 이후 팀 이름을 레이싱포인트로 바꾸었습니다. 대부분의 스탭들은 자리를 유지했고 타이틀 스폰서로는 케냐 국적의 스포츠 관련 사업과 스포츠 도박 사업을 펼치는 스포트페사(SportPesa)가 들어왔습니다.

 

 2019 - 로렌스 스트롤이 팀의 소유주가 되면서 그의 아들인 랜스 스트롤이 레이싱포인트의 새 드라이버가 될것이라는 얘기가 관계자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콘을 대신해 스트롤이 들어오면서 드라이버 라인업은 정리되었습니다.

 시즌 초반 4경기에서 페레즈가 모두 포인트를 기록했지만 스페인 그랑프리를 넘어오면서 업데이트에서 밀린 레이싱포인트는 포인트를 쌓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페레즈가 다시 살아나면서 꾸준히 포인트를 쌓아간 반면 스트롤은 시즌 내내 독일 그랑프리를 제외하면 레이스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레이싱포인트는 시즌 합계 73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차지했습니다.

 

 애스턴 마틴

 

 로렌스 스트롤이 애스턴 마틴의 지분을 사들이며 CEO에 올랐고 애스턴 마틴과 레드불의 타이틀 스폰서 계약이 끝나는 2021시즌부터 레이싱포인트는 애스턴 마틴 F1 팀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레이싱포인트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자우버로 많이 기억되고 있는 알파로메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F1
10
Comments
1
2020-05-01 17:16:38

애스턴 마틴으로 바뀌면서 팀의 목표가 상위권이 될텐데 메르세데스, 페라리, 레드불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WR
2020-05-01 17:41:31

 당장 올해도 핑크 메르세데스가 얼마나 빠를지 궁금하고 2022 시즌에 대격변이 일어났을때 어떤 모습일지 참 궁금하네요. 

1
2020-05-01 17:45:06

에디 조던이 모터스포츠 업계에서도 이름난 마딩발 이어서 그런지 조던 시절 드라이버 라인업이 꽤 화려하죠. 최소 준척급 이상 매물들.

WR
2020-05-01 19:40:35

 드라이버들의 이름값과 실력만 보면 충분히 경쟁력 있었을 때가 많았죠. 

1
2020-05-01 20:46:11

 아 그리운 이름들이 많네요..

 

한참 관심 많이 가지다가

 

중간에 슈미 은퇴하면서 좀 관심 멀어졌다가

 

요즘 다시 또 관심가지는데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잘 읽고 있어요.

WR
2020-05-02 12:27:39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추억의 이름을 생각해보는것도 하나의 재미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1
2020-05-03 18:02:43

이 짤부터 생각이 나는 제목이네요

WR
2020-05-04 12:32:13

 저도 가끔 쓸때 헷갈릴때가 있죠. 

1
Updated at 2020-05-03 20:16:02

현실판 란돌이라는 랜스 스트롤...

로렌스 스트롤은 캐나다 패션업의 거두라고 그러던데

언급해주신 브랜드 외에도 마이클 코어스와 타미 힐피겨의 대주주라고도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을 위해 레이싱 팀을 사주네? 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우스갯 소리로 이게 다 아내몰래 애스턴 마틴을 사기 위한 큰 그림이였다고도 하더군요 

WR
1
2020-05-04 12:33:31

 아들을 위해 팀을 사준걸 넘어서 아예 자동차 회사를 사줬다는 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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