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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F1 역사] 뿌리를 찾아서 - 알파타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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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4-28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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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이 시리즈도 절반을 넘어섰네요.

 오늘은 레드불의 자매팀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알파타우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Scuderia AplhaTauri Honda

 

 이전 팀들

 

 미나르디 (Minardi, 1985 ~ 2005)

 토로로쏘 (Toro Rosso, 2006 ~ 2019)

 알파타우리 (AlphaTauri, 2020 ~ )

 

 대표적인 드라이버

 

 미나르디 - 안드레아 드 체자리스, 알레산드로 나니니, 피에르루이지 마티니(Pierluigi Martini), 마크 웨버

 토로로쏘 - 비탄토니오 리우찌, 세바스티안 베텔, 세바스티안 부데(Sebastien Bourdais), 세바스티안 부에미(Sebastien Buemi), 하이메 알게수아리, 다니엘 리카르도, 장-에릭 베뉴, 막스 베르스타펜, 다닐 크비앗, 피에르 가슬리

 

 역사

 

 미나르디

 

 F1 이전


 미나르디는 1979년 지안카를로 미나르디(Giancarlo Minardi)가 이탈리아 파엔차(현재 알파타우리 본사)에서 창단한 레이싱 팀입니다. 

 미나르디 가문은 20세기 초반부터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해왔는데 지안카를로의 할아버지는 파엔차에서 피아트의 자동차 딜러로 활동했습니다. 아버지인 지오반니는 1940년대 자신의 차로 레이스에 참가했고 지오반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지안카를로가 미나르기 가문의 레이싱 부분을 물려받았습니다.

 지안카를로는 1972년부터 79년까지 F2에서 주로 활동했고 1976년에는 브랜즈 햇치에서 열린 레이스 오브 챔피언스라는 시리즈에서 페라리의 F1 레이스카인 312T를 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1979년 지안카를로는 이탈리아의 모터 레이싱 사업가인 피에로 만치니(Piero Mancini)의 지원을 받으며 미나르디 레이싱 팀을 정식으로 창단해 F2에 참가했습니다.

 1980년부터 4년간 F2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치뤄낸 미나르디는 1985년 F1에 정식으로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1985 - F2 시절부터 함께했던 엔지니어인 지아코모 칼리리(Giacomo Caliri)는 미나르디의 첫 F1 레이스카인 M184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차는 F1 뿐만 아니라 F3000을 겨냥해 제작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엔진은 이탈리아 회사인 모토리 모데니(Motori Mordeni)의 V6 엔진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시즌 개막까지 엔진이 준비되지 않아 코즈워스의 DFV 엔진을 시즌 초반 잠시 사용했습니다.

 첫 해 피에르루이지 마티니 단 한명의 드라이버로 시즌을 치룬 미나르디는 엔진의 열악함과 레이스카의 낮은 성능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단 3번의 레이스만 완주했습니다.

 

 1986 - 미나르디는 두 명의 드라이버로 라인업을 확장하면서 경험이 많았던 안드레아 드 체자리스, 루키였던 알레산드로 나니니를 영입했습니다.

 그러나 성적은 전년보다 뒷걸음질 치면서 드 체자리스와 나니니는 합계 32번의 레이스에서 단 2번만 완주하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남아공 그랑프리에서 두명 모두 완주. 드 체자리스는 8위, 나니니는 14위를 기록했습니다.)

 

 1987 - 지난해 두 명 모두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팀에서는 나니니를 계속 기용하기로 하고 드 체자리스를 아드리안 캄포스 (현재 F2에서 활동하는 캄포스 레이싱 팀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로 교체했습니다.

 그러나 성적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고 나니니가 3번, 캄포스가 1번의 완주를 기록했습니다.

 

 1988 - 결국 나니니는 베네통으로 떠났고 그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루이스 페레즈 살라(Luis Perez-Sala)라는 드라이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해 부터 미나르디는 모토리 모데니 엔진 대신 포드의 V8 엔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캄포스가 모나코, 멕시코,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연달아 퀄리파잉에서 탈락하자 팀에서는 마티니를 다시 불러들였고 마티니는 복귀전인 디트로이트 그랑프리에서 26대의 차중 단 9대만 완주하는 혼란 속에 6위를 차지하며 팀에게 F1 역사상 포인트를 안겨주었습니다.

 덕분에 미나르디는 1포인트, 컨스트럭터 10위로 처음으로 컨스트럭터 순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89 - 페레즈-살라와 마티니로 시즌을 시작한 미나르디는 점점 전력이 궤도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7번이나 퀄리파잉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이 해에는 4번으로 줄었고 영국 그랑프리에서는 마티니가 5위, 페레즈-살라가 6위를 차지하며 팀에게 첫 더블 포인트를 안겨주었습니다.

 거기에 마티니는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잠시나마 선두를 달리기도 하면서 5위를 기록했고 최종전이었던 호주 그랑프리에서 6위로 다시 포인트를 따내며 미나르디는 합계 6포인트로 컨스트럭터 11위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몰락세를 보이고 있던 브라밤과는 단 2포인트 차였고 미나르디의 뒤에는 마크 (March), 리지에, 롤라등의 팀이 있었습니다.

 

 1990 - 미나르디는 마티니를 그대로 두고 페레즈-살라 대신 지난해 1경기를 소화했던 파올로 바릴라(Paolo Barilla)를 영입했습니다.  그러나 마티니가 지난해 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하고 바릴라가 6번이나 퀄리파잉에서 탈락하며 미나르디는 컨스트럭터 순위밖으로 밀려났습니다. 다만 마티니가 미국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깜짝 2위를 차지한 것은 작은 위안이었습니다. (피렐리 타이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폴포지션이었던 맥라렌의 베르거와는 불과 0.067초 차이였습니다.)

 

 1991 - 미나르디는 그동안 쓰고있었던 포드 엔진 대신 페라리의 3.5리터 V12 엔진을 가져오며 현 세대에서 페라리 엔진을 쓰는 첫 커스터머 팀이 되었습니다.

 마티니는 여전히 자리를 지켰고 지난해 막판 두 경기를 달렸던 지아니 모비델리(Gianni Morbidelli)가 바릴라를 대신했습니다. 

 페라리 엔진으로 교체한 효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는데 시즌 3번째 레이스였던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마티니가 4위로 본인과 팀의 역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마티니는 시즌 후반 열린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베네통의 넬슨 피케(!), 미하엘 슈마허(!!)를 누르고 4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마티니 홀로 6포인트를 기록한 미나르디는 컨스트럭터 7위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1992 - 페라리 엔진을 사용한지 1년만에 미나르디는 다시 람보르기니의 V12로 엔진을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마티니가 BMS(Brixia Motor Sport)로 떠난 자리에는 에머슨 피티팔디의 조카인 크리스티안 피티팔디를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람보르기니 엔진으로 교체한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면서 피티팔디가 일본 그랑프리에서 거둔 1포인트에 만족해야 했고 컨스트럭터 순위도 12위로 하락했습니다.

 

 1993 - 2년만에 미나르디는 다시 포드의 엔진으로 돌아왔고 모비델리가 파브리치오 바르바짜(Fabrizio Barbazza)로 교체되었습니다. 

 개막전인 남아공 그랑프리에서 피티팔디가 4위를 차지하며 산뜻한 출발을 한 미나르디는 바르바짜가 유러피언 그랑프리 (도닝턴 파크, 세나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1랩으로 유명했던 레이스입니다.),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연속으로 6위를 차지했고 피티팔디가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5위를 차지하며 창단 이래 가장 많은 7포인트로 컨스트럭터 8위에 올랐습니다.

 

 1994 - 재정 압박에 시달린 미나르디는 BMS와 팀을 합쳤고 지안카를로는 팀 지분의 14.5%를 얻어냈습니다.

 지난해 후반 장-마크 고농(Jean-Marc Gounon), 마티니의 라인업으로 시즌을 마친 미나르디는 고농 대신 1984시즌 챔피언십 2위에 오르기도 했던 미쉘 알보레토(Michele Alboreto) 를 데려왔습니다.

 알보레토는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6위를 차지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마티니보다 부족한 성적을 기록했고 마티니가 스페인,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5위를 기록한 (스페인은 18그리드, 프랑스는 16그리드에서 출발) 미나르디는 5포인트로 컨스트럭터 10위를 차지했습니다.

 

 1995 - 미나르디의 재정적 어려움을 보다못한 버니 에클스톤은 플라비오 브리아토레로 하여금 미나르디에게 도움을 주도록 설득했고 브리아토레가 동의하며 미나르디의 지분 일부를 사들였습니다.

 알보레토가 은퇴를 선언하자 미나르디는 루카 베도어(Luca Badoer)를 영입했습니다. 그러나 마티니, 베도어 모두 한계를 보이며 후반기부터 마티니를 대신한 페드로 라미(Pedro Lamy)가 최종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 6위를 거둔 미나르디는 1포인트로 컨스트럭터 10위를 차지했습니다. 

 

 1996 -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폰드메탈(Fondmetal S.P.A, 합금 휠을 주로 생산하는 회사)의 설립자인 가브리엘레 루미(Gabriele Rumi)가 티렐과의 스폰서 계약을 끝내고 미나르디와 새로운 스폰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베도어가 포르티(Forti)로 팀을 옮기자 미나르디는 루키였던 지안카를로 피지켈라를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라미는 시즌 내내 부진했고 피지켈라도 신인의 티를 내며 포인트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시즌 후반 피지켈라를 내보내고 지오반니 라바지(Giovanni Lavaggi)를 데려왔지만 라바지는 피지켈라보다 더 부진을 거듭했고 결국 0포인트로 6년만에 컨스트럭터 순위에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1997 - 미나르디의 스폰서가 된 루미는 단순히 스폰서에만 그치치 않고 팀 자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루미는 미나르디의 공동 소유주 겸 회장의 자리까지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드라이버 라인업도 크게 바뀌었는데 야노 트룰리가 새로 들어왔고 카타야마 우쿄가 들어오며 미나르디의 첫 아시아인 드라이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에도 성적은 중하위권에서 맴돌았고 시즌 중반 트룰리가 프로스트 팀으로 이적하자 타소 마르케스(Tarso Marques)를 데려왔지만 다시 0포인트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1998 - 미나르디는 우쿄, 마르케스 모두와 계약하지 않고 대신 나카노 신지, 에스테반 투에로(Esteban Tuero) 두명의 드라이버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신지가 포인트권 바로 밑까지 올라오긴 했지만 정작 포인트를 따내는데는 실패했고 투에로는 신지보다 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미나르디는 3년 연속으로 0포인트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1999 - 이해부터 미나르디는 레이스카 명명 방식을 바꾸면서 새 레이스카의 이름은 M01이 되었습니다. (전년도 레이스카 이름은 M198)

 이번에도 베도어, 마크 진(Marc Gene)으로 드라이버 라인업을 물갈이한 미나르디는 마찬가지로 부진했지만 진이 유러피언 그랑프리에서 페라리의 어바인을 1.5초 차이로 재치고 6위를 차지하며 4년만에 팀에게 귀중한 1포인트를 선물했습니다.

 이 1포인트에 힘입어 미나르디는 컨스트럭터 10위로 올라섰습니다.

 

 2000 - 그동안 미나르디는 부진한 성적과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페이 드라이버(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팀에 거액을 내고 레이스에 참가하는 드라이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드라이버들에게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단어죠.) 를 기용하지 않으며 꿋꿋이 팀을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현실을 인정한 미나르디는 판-아메리칸 스포츠 네트워크의 후원을 받던 가스통 마자케인(Gaston Mazacane)을 영입해 시즌을 치뤘습니다. 그리고 엔진 공급 업체도 포드에서 폰드메탈로 변경되었습니다.

 마자케인은 부진을 면치 못했고 진까지 덩달아 부진하며 다시 시즌 노포인트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2001 - 건강이 크게 악화된 루미는 자신의 지분을 호주 출신 사업가인 폴 스토다트 (Paul Stoddart) 에게 매각했습니다. (루미는 이 해를 넘기지 못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스토다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F3000의 유러피언 레이싱 팀과 미나르디를 합쳤습니다. 그리고 새 엔진에는 유러피언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마르케스가 4년만에 팀으로 돌아왔고 미나르디에는 스페인 출신 루키 드라이버 한명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바로 페르난도 알론소였습니다.

 알론소는 데뷔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 12위를 거두며 같은 시기 데뷔한 라이코넨에 비해서는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마르케스, 알론소, 알렉스 융(이탈리아 그랑프리부터 3경기 참가) 3명은 모두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며 컨스트럭터 순위 11위를 기록했습니다.

 

 2002 - 알론소는 르노로 떠난 자리에는 호주 출신의 마크 웨버가 데뷔했습니다. 엔진 공급업체가 이 시즌에 한번더 바뀌었는데 푸조 계열의 아시아텍(Asiatech, 풀네임은 Asia Motor Technologies France입니다.)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개막전인 호주 그랑프리를 맞이했는데 웨버가 데뷔전에서 18그리드에서 출발해 5위로 마치는 대이변을 연출해 냈습니다. 홈 그라운드에서 자국 드라이버가 약팀의 레이스카로 좋은 성적을 올리자 호주는 열광했고 우승을 차지한 슈마허마저 이런 웨버의 인기에 묻힐 정도였습니다.

 이 포인트가 미나르디가 시즌 내내 거둔 유일한 포인트였고 팀은 컨스트럭터 9위에 올랐습니다.

 

 2003 - 웨버가 재규어로 떠나고 융도 짧은 F1 커리어를 마감한 미나르디는 저스틴 윌슨과 요스 베르스타펜의 라인업으로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즌 중반 캐나다 그랑프리까지 윌슨과 베르스타펜은 모두 합쳐 16번의 출전 중 6번 완주에 그쳤습니다.  여기에는 비라는 행운까지 겹치며 첫 우승을 노릴수 있었지만 스핀으로 우승을 날려버린 베르스타펜의 브라질 그랑프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후반기 윌슨을 대신해 니콜라스 키에자가 달렸지만 리타이어 횟수만 줄이는데 그쳤고 미나르디는 다시 한번 0포인트에 그치며 컨스트럭터 순위 10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해부터 미나르디는 2년간 사용했던 미쉐린 대신 브릿지스톤 타이어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4 - 키에자, 베르스타펜 모두 팀을 떠났고 지안마리아 브루니(Gianmaria Bruni), 졸트 바움가르트너(Zsolt Baumgartner)가 팀에 새로 합류했습니다.

 시즌 초반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두 드라이버 모두 수많은 리타이어를 기록했지만 미국 그랑프리에서 바움가르트너가 8위를 기록하며 (2003년부터 6위까지 주어지던 포인트가 8위까지로 바뀌었습니다.) 웨버 이후 41경기만에 팀에게 포인트를 안겨주었습니다. (8위가 대단하긴 했지만 레이스를 완주한 차가 8대밖에 없었습니다. 즉 완주한 드라이버중 최하위였습니다.)

 그리고 미나르디는 이 해 레이스보다 F1에서의 정치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팀을 소유하고 있던 스토다트는 엔진 공급 업체들에게 계약 비용을 줄여주는 대신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규정 변경에 대해 반대하겠다는 거래를 제시하기도 헀습니다. 그러나 이는 통하지 않았고 시즌 중반 퀄리파잉 형식을 변경하는 제안에 대해서도 107%룰 (1위와 7%이상 기록이 차이나는 드라이버들은 모두 실격 처리)이 부활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미나르디는 1포인트, 컨스트럭터 10위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2005 - 팀의 드라이버는 다시 크리스티안 앨버스(Christian Albers)와 패트릭 프리자커(Patrick Friesacher)로 바뀌었습니다. 이 해에도 미나르디는 여전히 중하위권을 해맸지만 미국 그랑프리에서 인디게이트가 터지면서 미쉐린 타이어를 쓰는 팀들이 모두 레이스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브릿지스톤 타이어를 쓰고있던 미나르디는 레이스에 참가해 6대중 5위(앨버스), 6위(프리자커)를 기록하며 7포인트를 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독일 그랑프리부터 프리자커를 대신해 조던 팀의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로버트 두른보스(Robert Doornbos)가 합류했는데 이로써 미나르디는 1962년 이후 처음으로 네덜란드 드라이버 2명으로 레이스에 참가한 팀이 되었습니다. (두른보스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모나코의 드라이버 라이센스를 얻었기 때문에 국적은 모나코로 표기되었습니다.)

 한편 스토다트는 적당한 구매자가 나올 경우 팀을 팔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쳐왔는데 그가 내건 조건은 팀의 본사를 파엔자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재규어 팀을 사들인 레드불이 자신들의 드라이버 프로그램에 소속된 드라이버들을 기용하기 위해 미나르디를 사들였습니다.

 그동안 미나르디를 응원해왔던 세계 각지의 팬들은 F1에 미나르디의 팀 이름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청원을 넣었지만 수포로 돌아가며 미나르디라는 이름은 F1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Minardi M191 (1991)

 

 

 이탈리아의 붉은 소, 토로로쏘

 

 레드불은 전 F1 드라이버였던 게르하르트 베르거와 50:50의 지분 비율로 팀을 사들였습니다.

 미나르디를 사들인 레드불은 처음에 스쿼드라 토로 로쏘(Squadra Toro Rosso, 토로로쏘는 레드불을 이탈리아어로 직역한 것입니다.)  로 변경했다가 스쿼드라라는 단어가 축구팀을 의미한다는 이유로 앞부분만 스쿠데리아로 변경했습니다.

 미나르디 시절 스태프들은 거의 대부분 자리를 유지했고 새 수장에는 프란츠 토스트 (Franz Tost, F1에서 크리스찬 호너와 더불어 팀 창단부터 현재까지 수장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두명 중 한명입니다.) 가 임명되었습니다.

 

 2006 - 토로로쏘는 시작부터 레드불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을수 있었는데 토로로쏘의 첫 레이스카인 STR1이 레드불의 2005년 레이스카와 너무나 흡사했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토로로쏘에서는 레이스카의 디자인이 레드불 팀의 전신인 재규어 때로 거슬러 올라가며, 따라서 소유권도 레드불이 아닌 포드가 가지고 있다고 일축했습니다.

 토로로쏘의 목적이 원래부터 레드불 드라이버 프로그램의 젊은 드라이버들을 기용하기 위함이였기 때문에 팀의 드라이버는 비탄토니오 리우찌와 스캇 스피드로 교체되었습니다.

 그러나 레드불도 F1에 적응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토로로쏘의 성적도 좋지 않았고 리우찌가 미국 그랑프리에서 거둔 8위가 팀의 유일한 포인트였습니다.

 결국 토로로쏘는 1포인트, 컨스트럭터 9위를 기록했습니다.

 

 2007 - 첫 해 코스워스 엔진을 사용했던 토로로쏘는 페라리가 지난 시즌에 사용했던 엔진을 새로 들여왔습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리우찌, 스피드의 라인업을 시즌을 시작했지만 레이스카의 신뢰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유러피언 그랑프리가 끝나고 스피드를 내보낸 토로로쏘는 자우버의 개발 드라이버로 나가있던 주니어 프로그램 소속 드라이버를 토로로쏘로 불러들였는데 이 드라이버가 세바스티안 베텔이었습니다. 

 베텔의 영입과 맞물려 레이스카의 문제도 서서히 개선되기 시작했고 최종전인 브라질 그랑프리를 앞두고 열린 중국 그랑프리에서 베텔이 4위, 리우찌가 6위를 기록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토로로쏘는 시즌 합계 8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기록했습니다.

 

 2008 - 리우찌와 계약을 맺지 않은 토로로쏘는 지난해까지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세바스티안 부데를 올렸습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전년도 스펙의 페라리 엔진을 받았는데 초반부터 레이스카와 궁합이 잘 맞으며 부데가 호주 그랑프리에서 7위로 첫 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이어 베텔이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5위를 기록했고 벨기에 그랑프리에서는 마지막 랩까지 부데가 3위, 베텔이 4위를 기록하는 등 선전을 펼치며 베텔이 5위, 부데가 7위로 첫 더블 포인트에 성공했습니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이미 컨스트럭터 순위에서 혼다를 앞질렀고 윌리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지만 이어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베텔이 대형 사고를 치게되는데, 비가 오는 날씨 속에 치뤄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베텔이 폴포지션을 따내는 이변을 연출한데 이어 레이스에서도 끝까지 순위를 유지하며 우승을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베텔의 우승은 여러가지 기록을 세웠는데 그동안 깨지지 않았던 그랑프리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갈아치운 것과 동시에 1957년 마세라티 소속으로 독일 그랑프리에서 판지오가 우승한 이후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 국적의 팀이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이 우승은 F1 역사상 유일한 페라리 엔진을 사용한 커스터머 팀의 우승이기도 했습니다.

 베텔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싱가포르, 일본 그랑프리에서 꾸준히 포인트를 쌓아올렸고 이에 힘입어 토로로쏘는 시즌 합계 39포인트로 컨스트럭터 6위에 올랐습니다. 6위는 본진이었던 레드불보다 높은 순위로 토로로쏘 역사상 레드불보다 순위가 높았던 적은 이 시즌이 유일했습니다. (레드불 - 29포인트, 7위)

 

 2009 - 쿨싸드가 은퇴한 자리를 매꾸기 위해 베텔이 레드불로 올라갔고 빈자리는 세바스티안 부에미(Sebastien Buemi)가 채웠습니다.

 지난 시즌에 깜짝 놀랄 활약을 펼쳤지만 팀에서는 이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현실이 되면서 토로로쏘는 1년만에 하위권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부진을 면치 못하던 부데는 (이 시즌에는 부에미와 부데가 3포인트, 2포인트로 비슷하긴 했습니다.) 시즌 중반 하이메 알게수아리(Jaime Alguesuari)로 교체되었습니다. (랠리쪽 레전드인 세바스티안 뢰브도 토로로쏘와 접촉했었다고 합니다.)

 시즌 막판 부에미가 2경기 연속으로 포인트를 따냈지만 토로로쏘는 8포인트에 그치며 컨스트럭터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2010 - 부에미, 알게수아리와 모두 제계약한 토로로쏘는 알게수아리가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커리어 첫 포인트를 기록하며 기분 좋게 출발했습니다.

 유러피언 그랑프리까지 10포인트를 벌어들인 토로로쏘는 그러나 나머지 기간동안 3포인트를 따내는 부진에 빠지면서 13포인트로 컨스트럭터 9위를 기록했습니다. 토로로쏘 밑에는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한 로터스, HRT, 버진이 있었습니다.

 

 2011 - 부에미와 알게수아리 모두 시트를 유지했습니다.

 개막전부터 부에미가 포인트를 획득한 토로로쏘는 시즌 중반 들어 부에미, 알게수아리가 모두 꾸준히 10위권 내에 들며 포인트를 벌어들였고 알게수아리가 이탈리아, 한국 그랑프리에서 모두 7위를 차지하는 등 부에미보다 좋은 활약을 펼치며 시즌 합계 41 포인트로 윌리엄스를 재치고 컨스트럭터 8위를 차지했습니다.

 

 2012 - 지난해 나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팀에서는 부에미, 알게수아리와 모두 계약을 포기하고 신인 드라이버인 디나엘 리카르도, 장-에릭 베뉴를 불러들였습니다. 이를 두고 팀 수석인 토스트는 '루키 트레이닝 스쿨'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호주 그랑프리에서 리카르도가 9위,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베뉴가 8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시작한 토로로쏘는 그러나 전반기 내내 1포인트도 획득하지 못했고 후반기 들어 살아났지만 시즌 합계 26포인트로 컨스트럭터 9위에 머물렀습니다.

 토로로쏘의 밑에는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한 캐이터햄, 마루시아, HRT가 있었습니다.

 

 2013 - 베뉴와 리카르도 모두 자리를 유지하며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시즌 초반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는데 리카르도가 첫 두경기에서 모두 레이스카 무제를 호소하며 리타이어 했고 베뉴도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10위로 첫 포인트를 얻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바레인 그랑프리를 기점으로 두 드라이버의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리카르도가 꾸준히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것과 달리 베뉴는 거듭되는 사고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뉴는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6위로 2008년 베텔 이후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임팩트에서는 리카르도를 앞섰습니다.

 시즌 후반 웨버가 은퇴를 선언하며 레드불에 자리가 비게 되자 베뉴와 리카르도는 그 자리를 매꿀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고 이때를 기점으로 베뉴와 리카르도의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다음 레이스였던 영국 그랑프리에서 리카르도가 5그리드를 차지한 반면에 베뉴는 타이어 펑쳐로 레이스에서 리타이어했고 이어진 독일 그랑프리에서도 리카르도가 6그리드를 차지한 반면 베뉴는 16그리드에 그쳤고 레이스에서도 리타이어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런 점이 리카르도의 손을 들어줘 이탈리아 그랑프리 직전 레드불에서는 다음해부터 비게되는 웨버의 빈자리를 리카르도로 대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토로로쏘는 합계 33포인트로 컨스트럭터 8위를 차지했습니다.

 

 2014 - 지난 시즌 중반 토로로쏘는 레드불에 맞춰 르노와 다년간의 엔진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리카르도가 예정대로 레드불로 팀을 옮기자 그의 빈자리는 GP3와 유러피언 F3 챔피언이었던 다닐 크비앗이 들어왔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베뉴는 지난해에 리카르도와의 경쟁에 밀린것을 풀어내기라도 하듯이 호주 그랑프리에서 퀄리파잉에서 6그리드를 차지했습니다. 크비앗도 8그리드를 차지한데 이어 레이스에서는 베뉴가 8위, 크비앗이 9위로 들어오면서 토로로쏘는 개막전부터 더블 포인트에 성공했고 크비앗은 베텔이 토로로쏘에서 세웠던 최연소 포인트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그러나 시즌 초반 베뉴는 연속되는 리타이어로 부진을 겪었고 그에 비해 크비앗은 적게나마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아올렸습니다.

 오스트리아 그랑프리를 기점으로 베뉴가 부진에서 벗어났고 반대로 크비앗이 신인의 한계를 보여주며 포인트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후반기가 시작되기 직전 토로로쏘는 다음 시즌 베뉴 대신 16살 밖에 되지 않은 루키 드라이버를 기용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드라이버가 막스 베르스타펜입니다.

 일본 그랑프리가 시작되기 전 베텔이 다음 시즌 레드불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발표하면서 그 자리는 크비앗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로 인해 베뉴는 다음 시즌 베르스타펜의 파트너가 될수 있는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습니다. 다른 후보로는 레드불의 주니어 드라이버였던 카를로스 사인츠, 피에르 가슬리, 알렉스 린(Alex Lynn)등이 꼽히고 있었습니다.

 베뉴는 일본 그랑프리에서 6위를 차지하는등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고 토로로쏘는 베뉴의 활약에 힘입어 30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차지했습니다.

 

 2015 - 베르스타펜의 파트너 자리를 놓고 고민하던 토로로쏘는 결국 카를로스 사인츠를 파트너로 결정했습니다. 이로써 베뉴는 3년 간의 토로로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개막전에서는 사인츠가 8위, 베르스타펜이 리타이어로 명암이 엇갈렸지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베르스타펜은 성적을 끌어올렸던 반면 사인츠는 탑10 내외의 성적을 꾸준히 거두었습니다.

 시즌 중반 사인츠가 4연속 리타이어를 겪으며 부진을 겪은 사이 베르스타펜은 헝가리, 미국 그랑프리에서 4위를 거두며 존재감을 뽐냈고 시즌이 끝난후에는 포인트 획득 경기 수에서도 사인츠를 앞지르며 꾸준함에서도 사인츠를 앞지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포인트 획득 경기 사인츠 - 7, 베르스타펜 - 10)

 토로로쏘는 두 명의 활약에 힘입어 전년보다 두배 넘게 늘어난 67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유지했습니다.

 

 2016 - 토로로쏘는 엔진 공급 업체를 르노에서 페라리로 바꾸면서 2년만에 다시 페라리와 손을 잡았습니다. 

 시즌 초반 베르스타펜과 사인츠는 비슷한 페이스를 보여주며 첫 4경기에서 베르스타펜이 11포인트, 사인츠가 4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러시아 그랑프리에서 크비앗의 황당한 사고에 실망한 레드불은 곧바로 크비앗을 토로로쏘로 내보내고 베르스타펜을 레드불로 볼러 올리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는 제대로 적중하면서 베르스타펜은 레드불에서의 데뷔전이었던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F1 역사상 최연소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반대로 토로로쏘로 내려온 크비앗은 레이스카 적응과 심리적인 압박으로 남은 17경기에서 단 4포인트에 그치는 부진을 겪었고 사인츠는 시즌 내내 안정적인 모습으로 꾸준히 포인트를 따냈습니다. (21경기에서 10경기 포인트 획득)

 토로로쏘는 사인츠의 활약에 힘입어 전년도와 비슷한 63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유지했습니다.

 

 2017 - 1년만에 토로로쏘는 르노 엔진으로 돌아갔습니다. 드라이버 라인업은 사인츠와 크비앗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사인츠가 계속 꾸준한 활약을 이어나간데다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6위,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 4위를 차지하는 등 임팩트까지 보여줬던 반면 크비앗은 시즌 내내 4포인트만 기록하며 부진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레드불에서는 크비앗을 토로로쏘에서 내보내고 그 자리를 주니어 드라이버였던 피에르 가슬리로 매꾸었습니다. 

 거기에 사인츠가 레드불-맥라렌-르노 간의 복잡한 딜을 통해 미국 그랑프리부터 르노로 팀을 옮기게 되면서 빈자리가 생기자 마찬가지로 주니어 프로그램 소속이었던 브랜든 하틀리로 대신했습니다.

 시즌 막판 드라이버 라인업이 모두 바뀐 토로로쏘는 53포인트로 컨스트럭터 7위를 기록했습니다.

 

 2018 - 지난 시즌 막판에 있었던 딜의 내용 중에는 토로로쏘가 혼다의 파워 유닛을 사용한다는 것도 들어 있습니다.

 이는 혼다와 엔진 공급 계약을 맺기 전 토로로쏘를 통해 혼다를 평가하기 위한 레드불의 의도가 섞여 있었습니다.

 드라이버 라인업은 가슬리와 하틀리를 유지했습니다.

 지난 몇년간 맥라렌의 암흑기를 불러왔다는 악명을 얻고 있던 혼다 파워 유닛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가슬리가 4위를 차지하는 깜짝쇼를 연출했습니다.

 그 후에도 가슬리는 모나코 그랑프리 7위, 헝가리 그랑프리 6위 등을 기록했지만 꾸준함에서는 사인츠보다는 떨어졌고 하틀리는 갖가지 레이스카 문제와 사고등으로 불운을 겪으며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시즌 후반에는 혼다의 파워 유닛 업데이트로 거의 매경기 그리드 패널티를 받는 악조건까지 겹치며 토로로쏘는 합계 33포인트로 컨스트럭터 9위로 내려앉았습니다.

 

 2019 - 리카르도가 르노로 이적하면서 레드불에 빈자리가 생기자 레드불에서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가슬리를 리카르도의 후임자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불운이 겹쳤다고 하지만 부진을 겪었던 하틀리와도 계약을 포기하면서 토로로쏘는 드라이버 라인업이 비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급한 상황에 몰린 토로로쏘는 자신들이 버렸던 크비앗을 다시 불러오는 한편 포뮬러 E에 데뷔가 예정되어 있던 알렉산더 알본을 빼오면서 드라이버 라인업을 겨우 맞출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불안한 모습을 시즌을 시작했지만 호주 그랑프리에서 크비앗이 레이스 내내 가슬리를 막아내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중국 그랑프리에서는 알본이 20그리드에서 출발해 10위로 레이스를 마치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거기에 독일 그랑프리에서 상위권 드라이버들이 연이어 리타이어 하는 틈을타 크비앗이 3위로 들어오며 베텔 이후 무려 11년만에 팀에게 포디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레드불에서 기대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던 가슬리가 후반기부터 알본과 자리를 맞바꾸며 가슬리는 1년도 안되 다시 토로로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토로로쏘에서 오히려 안정을 되찾은 가슬리는 레드불 시절만큼의 성적을 내주었고 브라질 그랑프리에서는 2위로 커리어 첫 포디움이자 2008년 베텔의 우승 이후 팀의 최고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전반기에서는 크비앗, 후반기에서는 가슬리가 활약을 펼친 토로로쏘는 85포인트로 컨스트럭터 6위를 차지하며 2008년 이후 최고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2020 - 레드불의 의류 브랜드 홍보를 위해 팀이름이 토로로쏘에서 알파타우리로 바뀌었습니다. 이에 맞춰 리버리도 기존의 파란색, 빨간색 계통에서 하얀색, 파란색 계통으로 바뀌었습니다.

 

Toro Rosso STR3 (2008)

 

 


 이것으로 알파타우리에 대한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적은 예산으로도 꾸준히 중위권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왔던 레이싱포인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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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Updated at 2020-04-18 17:35:53

토로로쏘 시절 사인츠와 막스 사이에는 큰 실력차이가 없었는데

사인츠가 좀 정치적으로 희생된거라는 말도 있더군요

 

알파타우리는 의류 브랜드라 굿즈가 예쁠 것 같았는데...

WR
1
2020-04-18 21:05:12

 최근에 브런들도 그런얘기를 했었죠. 

 토로로쏘 시절만 보면 베르스타펜이 사인츠보다 리타이어 횟수에서는 많았지만 포인트를 얻은 레이스도 많았었죠.

 대신 사인츠는 10~15위권에서 꾸준히 머물면서 잘풀릴때 작게나마 포인트를 따내줬고요.

 알파타우리 굿즈를 두고 얘기가 많던데 생각보다 질이 별로이라는 얘기가 많더라고요. 

 

1
2020-04-18 18:00:38

레드불보다 먼저 우승한게 토로로쏘죠. 가슬리 작년에 마음이 아팠는데 브라질에서 2위하는거 보고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WR
2020-04-18 21:07:20

 레드불 첫 우승이 2009년 중국이었던가요? 공교롭게도 둘다 베텔이 따낸 우승이었네요. 

 베텔이 이탈리아에서 우승했을때 미나르디 시절 스탭들도 있어서 그분들은 정말 기분이 남달랐을거 같습니다.

 가슬리는 토로로쏘 와서 심리적인 안정을 많이 찾은것 같습니다. 브라질에서 운도 따라줬지만 마지막 랩에서 해밀턴을 뿌리치는 장면은 대단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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